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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싶은 꽃

by 민진

시월 초였을까. 완두콩 꼬투리 같은 것이 나뭇가지에 생긴다. 연둣빛 작은 막대들이 조롱조롱하다. 가을 햇살에 갈래 머리 소녀도 언뜻 생각나는. 한 달여 자라자 꽃잎을 열 수 있을 만큼 되었다. 햇살이 더 필요한 시간. 시월 중순에 첫추위가 왔을 때는 긴장하지 않았다. 지리산이 찬 기운을 막아주어 겨울에 눈도 잘 내리지 않는 곳이니. 추워지더라도 온도의 기본 값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어제 비가 내리더니 추워진다는 소식에 아차 싶다. 벌써 십일월 중순이니 주렁주렁 매달린 꽃망울들을 어떻게 하나 안타까움이 한숨처럼 새어 나온다. 올 한 해만 세 번째로 꽃방울들을 머금고 피어날 에너지를 모으는 중이다. 어제 한 송이가 애달피 피어났다. 햇살이 넉넉할 때라면 진작 피어나 향기를 진동시켰을 것을 서서히 꽃 몸이 부풀면서 애쓰는 중이다. 해님에게서 필요한 온기를 끌어 모아야지만 꽃 입을 열 수 있나. 추위와의 싸움에서 이겨낼 수 있을지 밤이 걱정이다.


겨울 첫머리에 가지들을 잘라내고 뿌리와 밑둥치를 숨만 쉴 수 있게 분에 옮겨야 한다. 한갓지게 사람이 거처하지 않는 방에 들여 겨울을 나게 하면 된다. 새봄에 다시 심기를 하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제 할 일을 시작할 것이다.


바람소리를 듣기만 해도 한기가 느껴진다.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보자기를 씌우기로 맘먹는다. 꽃 이파리가 가장 약한 부분일 테니 감싸주면 근근이 버틸 수가 있을라나 조바심이 난다.

애 터지게 꽃을 피우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꽃이 아니더라도 피어나는 꽃도 많은데. 꽃나무의 간절함을 차마 떨치기가 어려운 것은 아닌지. 저의 애씀을 키우는 나는 알아주어야 할 것 같다. 길쭉길쭉 몸을 말고 있는 꽃대들은 제 몸을 풀어내어 바람 따라 그네를 타고 싶다.


보자기를 씌운다. 반짝 추위만 비켜 매달린 꽃들이 한 번 더 향기를 날리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며. 가는 가을에 꽃내음을 선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보자기를 펼쳐 덮어 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부분을 나누어 꽃망울들에 옷을 입힌다. 보자기 네 개가 꽃들을 보듬듯 했다. 그렇게만 해 주어도 밤에 얼지 않을 것 같아 안심이다. 아침 해가 떠오르고 따뜻해지면 벗겨내어 하늘을 보여준다.

사 일째 나무에게 추위를 막을 보자기를 씌웠다. 빨래집게가 요긴하게 쓰일 줄이야. 노란색 보자기이다 보니 황금 보따리가 나무에 얹힌 것처럼 보인다. 일주일 정도면 얼추 꽃들을 피워낼 수 있으려나. 낮에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화분을 옮겼더니 고마운 양 두 송이 더 피어주었다. 내일은 몇 송이나 더 피어날지.

늦가을이라고 해가 났다가 흐리다가 참 고르지 못하다. 훼방꾼 같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약을 올리는 것 같이 잠깐씩 나는 햇빛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피고 싶은 꽃이다.

글을 쓰고 있는 아침에 서울에 있는 딸로부터 ‘눈이 와요. 진눈깨비 같긴 한데’하는 카카오톡이 들어온다.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나 잠깐 중심이 흔들린다. 나의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된다.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할 만큼 해보았다는데서 위로를 받기로 한다.


거리를 지나다 보니 엔젤 트럼펫들이 아직 밖에 서 있다. 꽃 한 송이, 피어나려 도르르 말린 오므린 꽃잎이 다소곳하다. 우리 집처럼 여럿의 꽃들이 오밀조밀 매달린 나무는 없다. 겸손하게 아래를 향한 꽃잎을 살포시 모두 펼칠 수 있으면 좋겠다. 음악처럼 종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노오란 네 꽃잎이 피어나 꽃봉오리 하나하나의 수만큼 천사의 나팔이 울려나기를.


*두 주 뒤에 어떻게 됐는지 후기를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