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들이 서성입니다. 우수수 떨어져 내릴 때는 나무의 눈물 같기도 합니다. 저 산 위에서 불길 같은 것이 차차로 아래로 번져 내립니다. 낮은 구릉에서 억새는 한숨처럼 스러지다 일어나기를 곱쳐합니다. 수레바퀴 일상을 잘 들여다보면, 작은 웃음꽃이 피어나기도 하고 시냇물같이 돌돌 흐르는 잔잔함이 감돌기도 합니다. 오늘의 구름이 어제의 것이 아니듯 하늘은 늘 한가롭기만 합니다.
어머니 생신이었습니다. 미역국과 좋아하시는 음식들을 마련해 갔습니다. 보고 싶었다며 눈물부터 내 보이시는 분 앞에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남편이 자주 가니 거기에 마음을 살짝 얹히어 무거움을 내려놓곤 했습니다. 먹을 것은 어떻게라도 먹을 수 있는데 가장 힘든 것이 고적함이라고요. 혼자 있는 시간이 물안개처럼 내릴 때 가끔은 먹먹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에 세 시간씩 집에 들르는 요양보호님의 발걸음이 시작된지는 아직 한 달이 안 되었습니다.
생일 지나 두 주일 뒤에나 내려온다는 막내아들 말에 속이 편치 않으셨을까요. 다음날 집에 온 보호사님에게 가스도 켜지 말고, 음식도 만들지 말고 집에 빨리 가라는 말밖에 안 했다는.
다음날 그 아주머니의 발이 부어 병원에 가느라 어머니한테 들를 수가 없었답니다. 남편에게 전화해서 안 온다고 성화를 대셨다고. 어제의 자신은 잊어버리고 오늘을 사는, 사람이 고픈 나날입니다. 고독한 시간은 누구나 힘에 겨운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추억에 잠길까요.
계절은 누구나 지납니다. 어머니를 뵈올 때마다 내 얼굴이 겹쳐집니다. 잔상 하나하나에 섞여 듭니다. 먼 얘기가 아닌 것 같아 미리 아픔을 맛봅니다. 어리석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슬픔을 앞당길 필요는 없는 데도 서러움이 밀려듭니다.
어머니의 화단에 국화가 만발했습니다. 담장 밑의 아이들처럼 소박한 즐거움을 내뿜는 것 같이. 돌담 아래 환한 국화도 서리가 내리면 지게 되어 있습니다. 질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질서 안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것일 테니까요. 작은 움직임들이야 어찌해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큰 질서들은 우리 울타리 안에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가난한 존재들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파리들이 곱게 물들어 나부끼는 것을 보며, 사그락 거리는 마른 잎을 밟으면 뭔지 모를 깊은 것들과 마주합니다. 차분해지는 찰나들입니다. 내 안의 나를 가지런히 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깁니다. 저 나뭇잎처럼 언제 떨어져도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늦은 가을을 좋아했었습니다. 산산이 드는 단풍보다는 가을걷이를 다 해 버린 빈 들녘을 바라보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아무렇지 않은 들판이 편안해 보였습니다. 할 일을 마쳤다는 끝 모를 이야기를 알아들은 때문은 아니겠지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차올랐습니다. 비어야 가득 찰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는지도요.
외로운 것은 외로운 대로, 비인 것은 비인대로, 떨어져 내릴 것은 떨어져 흩어지는 대로 가을은 그렇게 우리들 마음에서 살아내는 계절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