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들판을 기웃거리던 하룻날 강변에서 들꽃 하나 캐왔다. 콩 분에 심어 햇볕이 잘 드는 소나무 화분 위에 두었더니 한참 노란 꽃을 앙증맞게 보여주었다.
꽃이 더 이상 피지 않는다 싶더니 잎이 새파랗게 다보록해진다. 이파리도 볼만 하여 좋아라 했다. 기세를 넓히는데 놀라울 정도다. 주먹만 한 화분 구멍으로 실 가닥을 야무지게 뻗친다. 소나무 화분이 다 저의 집인 줄 아나.
세 계절이 지나는 동안 소나무 바늘잎이 노래진다. 처음으로 달린 애기 솔방울도 연두가 아닌 엉거주춤한 색이다. 몇 년째 분갈이도 해주지 않고 말도 없이 세를 들였으니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 격인가. 안되어 보여 작은 화분을 떼어내려 안간힘을 쓴다. 뿌리를 얼마나 깊게 내렸는지 잘 떨어지지를 않는다. 잔뿌리들이 수북하다. 소나무 기가 다 빨린 듯.
양지꽃인 줄 알고 들였었다. 양지꽃은 이파리가 둥글면서 세 잎이고 밑으로 잎 받침처럼 두 잎이 나 있다. 잎이 참 예쁘다. 양지에 살아서 양지꽃이 되었나. 집에 있는 식물은 잎 다섯이 타원형으로 톱니바퀴 자국이 도드라진다. 뱀딸기다. 잎이 자라지 않고 꽃이 피었을 때 가져와서 잘못 알았나 보다.
어렸을 때 눈썹 하나 뽑고 뱀딸기 하나 먹고. 또 눈썹 하나 뽑고 딸기 한 개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 자주 본 풀을 못 알아보았는지 건성으로 보고 자란 것 같다. 선홍색의 예쁜 딸기를 하필 뱀딸기라 했는지. 눈썹을 뽑아주고 먹어야 뱀이 쫓아오지 않는다고 한 것도 같고. 몇 알 먹지 못하게 장치를 해났나.
잎이 무성하여 보기만 해도 시원시원하다. 뽑아서 없앨까 하다가 넉넉한 화분을 마련하여준다. 봄이 오면 노란 꽃들과 새빨간 뱀딸기를 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다진다. 누군가 뱀딸기를 다 키우느냐고 할 것 같아 이것도 야생화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열매까지 맺혀 주는 것이 어디 흔하냐면서.
아침에 ‘세한도’ 시 세편 받아 읽었다. 시의 말들에서 인생의 추위가 느껴진다. 더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세한도가 없을까라는 물음이 내 안에서 툭 튀어나온다. 계절에 대한 세한도 같지만 곡진한 삶의 아픔이 어우러져 진정한 세한도를 이루어 낸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나오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북풍한설에 잎이 더욱 짙푸르다고. 소나무는 추사 자신이었다는데. 아내를 잃고 귀양살이를 몇 번 하면서 인생의 추위 가운데서 살을 에는 마음을 화폭에 담았을까.
내 울안의 소나무도 힘들어 보인다.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에 그늘이 진다. 알 거름이라도 사 와서 비타민처럼 올려주어야겠다. 내년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분갈이를 해 주는 조건으로. 그때까지 찬 계절을 잘 버텨내기를 바란다.
하루하루를 못 이기는 척 살아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소나무도 세한도의 계절을 지나왔나. 한 곳에 뿌리를 박고 서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소나무는 밤이면 별빛을 쏘이고 달이 뜨면 달빛을 머금고 햇살 받아 기운을 얻는 것은 아닐까.
종종거리며 사는 것을 보면 내하루나 소나무 하루나. 나의 세한도는 언제 적이었는지 가만 톺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