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아들이 학교에서 신청한 군 입대 훈련소가 춘천이었다. 부산에서 신청했는데 어떻게 맨 위쪽에 있는 훈련소로 배치됐는지. 논산훈련소에 가게 되었다면 그대로 육군에 보냈을 텐데. 소문에 춘천에서 훈련받으면 거의가 전방으로 간다고 했다. 아는 사람 아들이 전방에서 군 생활을 하는데 추운데도 침낭에 자면서 훈련을 받고, 발이 동상에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고 했다.
아들은 추위를 많이 탔다. 해가 저물녘에 입대를 하게 되면 세 번의 겨울과 맞닥뜨린다.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조바심이 났다. 뭔가를 해볼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을 때의 막막함. 군에 갈 사람은 가만있는데 내가 지레 겁을 먹었다. 먼저 군에 가 있는 아들에게 얘기를 했더니 다시 신청하면 된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기적 엄마인 것이 분명하다. 누군가는 감당해야 하는 몫인데 내 아들은 안 되고 남의 아들은 된다는.
오월 중순에 집에서 차로 오 분 거리인 공군교육사로 훈련을 받으러 갔다. 막 더위가 시작되는 찰나였다. 헌병으로 복무했으니 특기학교도 이곳에서 한 셈이다. 휴가를 자주 왔다. 군대에서 집이 가장 가까운 얘가 너지 하고 물으면 아니란다. 부대 내에서 바라보면 집 창문이 보이는 얘도 있다며 손 사례를 친다.
아는 분 아들이 얼마 전에 화천 훈련소로 입소했다. 남쪽도 날씨가 추운데 북쪽은 어떨까 생각하니 마음까지 얼어붙는다. 아들을 그곳까지 데려다주고 와 일주일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아무것도 못했다는 이야기를 건네 듣는다.
막내아들이 훈련을 마치고 외박을 나왔다. 특기학교로 헤쳐 모이기 위해서이다. 밤이 되자 온몸이 불덩이인데 춥다고 사시나무 떨 듯이 떨고. 어쩔 줄을 몰랐다. 응급실에 가야 하나 생각은 했지만 가지 않았다. 끙끙 앓는 아들 옆에서 미지근한 물로 몸을 닦이고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며 마사지를 계속했다. 어렸을 때 배가 아프다고 하면 엄마 손은 약손 막내 배는 똥배 하며 어루만지던 기억은 희미했다.
먼동이 틀 무렵 펄펄 끓던 열이 내리고 낳았다. 다음날 아들과 같이 훈련받던 인천에 사는 아이 엄마의 전화가 왔다. 아들이 괜찮으냐고. 자기 아들은 응급실에 다녀왔고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다고 특기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훈련받는 계절이 아예 춥거나 덥거나 했으면 오히려 괜찮았을지. 청춘들이 모여 그 열기를 주체할 수 없었나. 에어컨을 차갑게 틀어서 그런 것이란다. 열이 없는 애들은 추워서 냉방병으로 고생을 하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 전방으로 가도록 두었어야 했나 의구심이 난다. 가보지 않는 길에 대한 미련이겠지만 집과 멀리 떨어질 기회를 빼앗은 것은 아닐까. 아들에게 주어진 길에 대하여 존중했어야 한 것은 아닌지. 엄마로서 고생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마음이야 고되겠지만. 지나간 것에 미련은 늘 남는다.
제대 후에 아들은 긴 휴학에 들었다. 무엇을 차곡차곡 채우는 중이었을까. 학교에서 주는 마지막 기간을 다 보내고 있다. 군대 다녀온 뒤에 자기는 변했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나로서는 알기 어렵다.
품 안에 자식이라고 한다. 다 자라면 쓰다듬고 어루만질 일이 없다. 아들이 아프던 밤 내가 손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어렸을 때도 아토피로 고생한 것 때문에 애를 먹었는데. 엄마가 옆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열을 내리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었을지도.
늦깎이로 다니는 학교가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수업을 하였다. 중간 고사와 기말고사를 집에서 치른다. 답안을 피디에프로 만들어 보내라고 한다. 무슨 암호 같다. 매번 보는 것이지만 봐도 잘 모르겠다. 새벽이 되어 잠든 아들을 부르면 부스스 일어나 나온다. 짜증 내는 일이 없다. 어쩌면 막내아들 때문에 나는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모 자식이니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여전히 컴퓨터를 잘할 줄 몰라서 아들 도움을 받고 있다. 내가 공부하는 절반의 공은 아들 것이다.
엄마 손은 똥 손 아들 손은 약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