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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해제와 별

by 민진

마음이 약하다 보니 작은 일에도 상처를 입는다. 그런 내가 가끔 처량해 보인다. 아직도 그 정도밖에 안되느냐고 타박한다. 정신의 약함도 병인가 하고. 단단한 마음의 소유자들이 딴엔 부럽다. 말랑말랑한 마음을 어떻게 하면 강단 있게 만들 수 있는지.


조별과제만 하다가 혼자 하는 발표가 주어졌다. 조원이 피피티를 만들고 자료조사를 나누어하다가 혼자 한다는 것의 부담감. 세 번째 강의가 보여 주기 식인 것 같아 과제를 그렇게 하면 되느냐고 질문을 했었다. 예시를 드는 것이기도 하였다고. 잘 기억하였다가 과제 발표를 해야 했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을 풀어냈다. 모두들 교수님의 교수 방법을 따라 발표를 한다. 사 학년들과 듣는 수업이라 맨 마지막이 내 순서였다. 특별하게 발표를 했다는 교수님 이야기가 잘못했다는 말로 들려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비교는 감정의 수직선을 그리며 나를 맨 밑에 두게 한다. 그날 저녁 분명히 할 일이 쌓여 있는데도 부루퉁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만 잤다. 자는 중에도 괴로움이 덮쳐온다.


발표한 것을 보고서로 작성하여 보내라 한다. 어떤 형식으로 보내야 할지 제한을 두면서 꼭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아도 되며, 창의적으로 해도 된다는 말에 눈이 커진다. 과제는 꼭 한 가지 방법으로만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한 사람 정도 다르게 접근해도 되지 않을까. 머리가 들어지는 순간이다. 나랑 타협하는 시간인지도.

왜 똑같지 않다고 괴로워해야 하는 거야. 이미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데. 점수 좀 못 받으면 어때. 나를 내려놓기로 한다. 내 안의 어둠의 그림자들이 스멀스멀 스러져 간다.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무장해제라는 말을 해리포터에서 마주했었다. 수많은 싸움 끝에 볼드모트를 무장해제시키며 평화를 되찾는다. 그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니다. 적을 쓰러뜨린 뒤의 순간이 가장 조심해야 할 때인지도. 자신과의 싸움이 아직 남아있기에. 모든 것을 쥘 수 있는 강력한 지팡이가 해리포터의 손에 들려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지팡이를 부러뜨려 강물에 던지는 장면을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나를 나에게서 무장해제시켰다면 맞는 말인지. 나를 괴롭히는 것들로부터, 더 잘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으로부터도. 어떤 상황과 감정에 밀착되어 힘들어하는 것에서도 자유 해야 할 것 같다. 자신에게도 때론 온유함이 필요하다.

기말 첫 시험을 치르고 집으로 오려는데 차 시간이 조금 남았다. 한가할 때 한 번씩 거니는 분수대로 향한다. 겨울인데도 물줄기가 시원하게 뿜어져 나온다. 물이 떨어진 곳에 별이 그려지고 있다. 분명 전에는 보이지 않았었는데. 내 마음의 여유 때문인지, 하늘 때문인지 연못에서 별을 찾아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