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마을이 하나로 세웠다고 삼일교회였다. 고등학교 시절 성탄 이브에는 밤을 새우고. 청년들과 학생들 열 서 너 명씩 새벽 한 두시에 나뉘어 마을로 향했다. 그렇다고 꼭 세 마을만 다닌 것은 아니었다. 사이사이 외따로 있는 집이나 먼 곳까지 갔다. 아이나 어른이건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있는 집은 다 찾아갔다.
귓볼을 때리는 바람도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천사처럼 소리 내지 말자고 발소리를 죽여 사뿐히 다녔다. 가로등이 있지도 않았는데 어둡지 않았다. 눈이 내려 사방이 하얗고 고요하고 눈꽃들이 피어있는 밤. 수많은 별들이 하늘에서 빛났다.
첫 집에 도착하여 알아서 가만가만 자기 자리를 찾아 선다. 이끄는 분이 작게 첫 소절을 외워 들린다. 다 같이 입을 모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든지, ‘저들밖에 한밤중에 양 틈에 자던 목자들’, ‘천사들의 노래가 하늘에서 들리니’. 연습해온 몇 곡을 어둠이 아직 머무는 집 앞에서 찬양을 했다. 거의가 일절만 불렀지만 때론 두 개의 노래를 메들리로 부를 때도 있었다.
그 집 사람은 자다가 깼는지 고요한 가운데 찬송이 울려나기를 기다렸다가 불을 켰다. 조심스레 준비해 놓았던 선물을 가지고 나왔다. 아마 무엇을 사야 할까. 일주일 전부터 생각하고 준비하여 이때를 기다린 것은 아닌지. 교회 오빠가 가지고 다니던 자루에 덥석 넣었다. 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탕이나 과자이다. 그때만 해도 과자가 귀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주일학교 아이들 선물 주머니가 볼록해질 요량은 안 봐도 보였다. 아이들 웃음까지도.
어떤 이는 집 앞에 우리가 이르기도 전, 불을 환하게 켜놓고 기다리고 있다. 고맙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지만 뭔가 김이 빠졌다. 찬송을 부르는데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비밀을 들킨 아이처럼. 아무도 모르게 들리어져야 할 노래가 드러나 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었나. 멍석을 깔아놓았다는 느낌.
끝까지 불이 켜지지 않는 집이 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쳤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와지는 안쓰러움. 아이들만 주일 학교에 나오는 집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 아이였을 수도 있기에. 혼자 손에 바빴던 엄마를 돕느라 동생들은 교회에 갔는데 나는 못 가게 했다. 농한기나 성탄 때에 주일학교를 나갔기 때문에 내 이야기 같아 더 마음이 쓰였다.
집집마다 들리어졌을 새벽송을 부르며 그 노래가 하늘에 닿기를 바라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별빛이 내리고 눈 빛으로 먼 곳에까지 찾아가 찬양을 부르던 성탄 새벽.
선물 자루가 그득해질 즈음 약속되어 있던 집 마당으로 들어가 마지막 새벽송을 부른다. 그곳에서 떡국을 먹고 먼길을 되돌아 집으로 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재미나게 나눠 주다가 눈을 번쩍 뜬다. 너무 늦어 성탄예배는 드리지 못하던.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평화가 그리운 우리에게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