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귀퉁이에 한 점처럼 찍혀 있는 식당으로 약속을 잡는다. 직사각형의 컨테이너를 가져다 놓은 듯하다. 학교에서 그 땅까지도 사고 싶어 했을 터인데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용하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식당을 연다. 요리는 시어머니가 하고 시중은 며느리가 맡는다. 시어머니가 더 요즘 시대와 합하려는지 세련돼 보인다. 며느리는 요새 사람 같지 않게 수더분하고 정이 가는 모습이어서 좋기만 하다. 그래서 계속 가계를 꾸려 갈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이곳에 내려온 지 삼십 년이 되어가는 동안 학교는 영토를 넓혀갔다. 길 건너까지 학교 건물들이 우뚝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학교 입장에서 보면 정리가 안된 느낌도 있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뚝심으로 다가온다. 무너지지 않고 가치를 드러내는.
친구는 그곳이 자기 초등학교 때부터 있었다고. 그때는 식당 앞에 색색의 얼음 주스를 팔기도 했단다. 어느 날 너무나 먹고 싶어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더니, 지켜보던 어떤 아저씨가 주스를 한잔 사준 기억이 난다는. 반백년은 된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겨울, 식당에 가면 물을 잘 마시지 않는다. 냉장고에서 나온 물이 내 몸을 타고 들어가 나를 얼려버릴 것 같아서. 스텐 물병이 따스하다. 한 잔의 물을 마신다. “따뜻한 물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했더니 어제도 한분이 따끈한 물을 주니 대접받는 것 같다며 좋아하더란 얘기를 들려준다.
학교에서는 많이 오시느냐고 묻자 날마다 박사님들 사이에서 산다며 웃는다. 상이네요 하자 맞다 맞장구를 친다. 학교 한 모서리를 차지하고 꾸준히 식당을 하는 분들이 참 고맙다.
잎채소들이 자랄 때는 갓 따온 상추들이 나풀거리며 상에 오르고 풋고추가 들쭉날쭉 키재기를 한다. 손수 농사지은 재료들이라 더 맛깔난 느낌. 맛이 치우치지 않는다. 인공조미료를 거의 쓰지 않으니 순둥 하게 서로서로 배려하면서 각자의 맛을 내는 듯한. 엠에스지란 다른 모든 맛들은 덮어버리고 자기만 둥둥 뜨는 것 같은데 여기선 고유함이 배어난다.
요리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각각의 식재료의 맛이 살아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개성이 있으면서도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각양각색의 맛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진짜 요리가 아닌지.
낙지볶음을 먹는다. 당면은 당면대로 낙지는 낙지의 맛과 색을, 대파의 시원함이 어우러져 삼삼한 식탁이 된다. 단순하게 몇 가지 들어가지 않아도 제 맛을 내는 것이 살아 있는 맛의 경지 아닐까.
막노동을 하다가 식사를 하는 분들도 있고, 교수님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작은 식당이다. 처음 소개받았을 때는 누가 이런 곳에 와서 밥을 먹나 했었다. 의외로 단골이 많은.
한 끼 식사를 정 있게 할 수 있는 곳. 엄마 같은 주인과 누이 같은 며느리를 보면서 더 다정다감함이 느껴진다. 집에 와서 먹는 밥처럼 푸근한 식탁을 마주 할 수 있는 곳, 작으나 큰 식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