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를 한 채 들였다. 마당이 비좁아졌다. 해가 나면 부직포를 걷어 올리고 저녁이면 덮어 씌운다. 월동이 된다고 하던 나무들도 한파에 꽃눈이 얼부풀어 꽃을 보여주지 않았었다. 깻잎 같은 수국 이파리만 무성한 여름을 지났기에. 제라늄들은 최저온도 십 도를 맞춰 주어 야기에 추워지자 거실로 들였다.
잎을 떨구고 잎눈, 꽃눈만 조그맣게 내미는 수국 화분을 하우스로 옮겼다. 마냥 따뜻하면 또 안 된다. 저온 요구도를 맞춰야 꽃이 피어나기에. 발열 등을 설치할 수 없는 이유. 식물이 가지고 있는 감지기의 치밀함이라니.
촛불을 밝히는 것이 적합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우스 안의 온도와 밖은, 오 도 차이를 보인다. 찬 기운의 오르내림에 따라 불을 켜는 양초의 수가 달라진다. 초 부스러기들이 수북이 쌓인다. 사온 양초들은 굴을 파듯이 가운데만 타 들어가기에. 전자레인지로 양초를 만든다는데 겁이 나서 중탕으로 재활용하기로. 쌀자루에서 풀어낸 실이 면실 같기에 땋아 심지를 만들었다. 물같이 된 촛농을 우유갑에 부었다. 시간이 흘러 꾸들꾸들 몸을 굳힌다. 우유갑을 벗겨내니 향기 나는 양초 완성.
잘 타는지 불을 붙인다. 후루룩 사그라져 버린다. 타 내리는 실망감.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것이었나. 어릴 때는 집집마다 반짇고리에 누런 무명실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겨울이 가까워 오면 이불 홑청을 꿰맸다. 그 곁에서 큰 바늘에다가 기다랗게 무명실을 꿰어 드리곤 했다. 빨강과 초록이 어우러진 이불 색감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흙집은 외풍이 심해 두꺼운 이불을 덮어야만 되는. 밤에, 낮에 꿰맨 이불을 덮으면 바람과 햇빛 냄새가 났었는데.
시장 단추 파는 곳에서 면실을 사 온다. 값도 저렴하다. 달력 앞장을 접어 실패로 삼는다. 혼자서는 실을 감기가 어려워 아들 양손에 실 꾸러미를 넣고 있으라고. 주거니 받거니 돌아가며 풀어 옮기니 고새다. 저만큼의 실이면 몇 개의 초 심지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갈래 머리 따듯이 실을 세 줄로 땋아 내린다. 심지 탭에 묶고 마른 우유갑에 순간접착제로 붙인다. 끓는 물에 양초 조각이 채워진 알루미늄 통을 넣어 끓인다. 시간이 지나 녹는다. 촛농을 우유갑에 붓는다. 나무젓가락 사이를 조금 벌려 심지가 가운데에 오도록 고정시킨다.
아들을 부른다. 어려운 과정을 거쳤으니 불을 켜는 순간을 같이 하고 싶다. 어떻게 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불꽃이 주홍으로 타원형을 완성. 손뼉이라도 치고 싶은. 모든 과정이 쉬이 되었다면 그러려니 여기고 지났으려나. 겉보기에는 차이가 없어 보이나 힘없이 스러져버린 합성섬유 실과, 같아 보이지만 속내가 깊은 목화에서 온 무명실이 참 다르다.
심지가 있어야만 자신을 태울 수 있는 양초. 혼자서도 타긴 타되 불꽃을 제대로 사를 수 없는 무명실. 서로가 서로에게 끌리고. 어쩌면 우린 힘을 보태야만 자신을 태울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오는 겨울에는 아예 소이 왁스로 일삼아 양초를 만들고 싶은. 친구에게 무명실 이야기를 했더니 그냥 양초를 사면되지 만드느라 애쓰느냐 했다. 나도 안다. 사서 쓰는 것이 제일 값싸게 치인다는 것을. 그렇지만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하는 것들을 돈의 가치와 견주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있기는 할까. 무엇인가를 힘들여 만들었을 때의 기쁨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후루룩 사그라지지 않고 진득이 타는 무명실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보기도 하는.
봄이 오면 꽃 피워낼 로즈메리, 라벤더, 치자 꽃이 하우스 안에서 새록새록 숨 쉬고 있다. 그중 가장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은 수국. 마른 막대기 같은 저 가지 속에 색색의 수많은 꽃송이들이 숨어있다니. 신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