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꽃에 대한 그리움

by 민진

변화는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몸집을 키웠다가 순식간에 찾아오는 것 같다. 어머니의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져 서울 시누이 집으로 가셨다. 삼십 년을 빠짐없이 다니던 설을 쇠러 가지 않아도 되다니. 바라던 바이기도 했지만 허전함은 어쩔 수 없다. 사람은 반복됨에 지배당하고 있는지도. 다른 형제들은 서울 가까이에 사니 다 같이 모였다. 설날 열한 시에 온라인으로 미국과 서울 진주가 연결되어 어머니도 뵙고 형제간에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남편은 아이들 데리고 아무도 없는 시골집에 가서 하룻밤 묶고 오자고 했다. 나는 한 박자 늦춰야만 될 것 같다고. 결론이 나지 않아 아이들이 그러자면 그러겠다고 마무리 지었다. 처음에는 좋다고 의견을 모으더니 할머니가 아프셔서 다른 곳에 계시는데 우리들이 즐겁게 있다가 온다는 것은 조금 안 맞는 것 같다며 생각을 정리했다.


오랜만에 아이들과만 지낸 설이었는데 홀가분하지 않았다. 친정을 찾는 것도 참아야 될 것 같은 미묘한 감정이 나를 얽어맸다. 그 어른도 허리가 안 좋아서 힘이 드는데.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의식들이 나를 짓누르고 노년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해쓱한 시간이었다.


삼십여 년 미운 정 고운 정의 세월이 어느 사이 흘러갔는지. 내 속이 굳어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고부간에 잘 지내는 분도 많은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 걸린다. 바라기는 당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외삼촌댁에서 자라신 어머니는 고슴도치처럼 바늘을 세우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인 것 같다가도 본디대로 자신의 뜻대로만 일을 해 나갔다. 관계가 좋아지려면 서로의 생각들이 주고받아짐이어야 되는데. 늘 어긋나다 보니 겉으로만 순종을 가장한 며느리는 아니었는지. 어머니의 잘못만이 아니라 고비고비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한 나에게 반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연휴에 네플 릭스로 ‘빨간 머리 앤’을 보았다. 드라마가 길어 강행군을 하여 이박 삼일 간에 막을 내렸다. 나이 들어 다시 보니 많은 것이 보였다. 십 대들의 우정과 나이 든 어른들의 우정을 그려나가고, 곳곳에 껴있는 인종문제와 종교들의 모습. 성소수자들과 나이 지긋한 원로들과 젊은이들의 대립이 맞물린다. 기존의 것의 고집과 변화하기를 원하는 세대와의 갈등은 어느 시대나 있었던 듯하다. 책을 읽은 지가 오래되어 가물가물 한 데다 저런 문제들이 구석구석 숨어있었는지. 다시 책을 펼쳐보아야 될 듯.

로맨틱 소설이라 생각했었는데 사회소설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장치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는지. 삶과 사랑,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여전한 삶. 생명은 생명으로서 살아내야 하는 것이기에. 바뀜은 아프지 않고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부딪힘은 새로워지고자 하는 욕구임을. 예나 지금이나 반복되고 있는 문제들은 무늬만 조금 달라져 보일 뿐 같은 것의 연속임을. 굳어지지 않는 사고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나만이 옳다는 편협함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번 겨울 빨간색 꽃에 대한 그리움이 유난히 컸다. 나이 든 이유인가 싶다가도 정도가 지나쳐서 의아했다. 빨간 꽃을 사 날랐다. 백량금이 주렁주렁 붉고 분홍의 제라늄들이 곱게 피어있는데 무엇 때문에 빨간 꽃을 그리워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