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뱃돈

by 민진

은행에 볼 일이 있어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렸다. 아주머니 한 분이 내 앞을 지나간다. 올림머리로 우아한 느낌을 주었고 윗옷은 세련된 연분홍 스웨터에 검은색 주름치마를 입었다. 주위의 다른 분들은 나이가 지긋한데 나처럼 외모에 신경 쓰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 아주머니 번호가 불리어졌는지 창구 앞으로 다가간다. 직원이 얼른 마중을 나온다. 로열 라운지라고 써진 곳으로 모셔 들이는 모양새다. 그곳으로 안내되어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얼마 큼의 예금이 예치되어 있으면 저런 대접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일을 마치고 나갈 때도 직원이 배웅을 하였다.

딸이 중학교 다닐 때 잘 사는 친구가 있다고 했다. 설날에 사업을 하는 작은 아버지가 세뱃돈을 백만 원씩 준다는. 그 돈으로 안전한 주식을 사 모은다고. 집에서도 꾸준하게 용돈 관리를 해 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돈을 굴리면 십 년, 이십 년 뒤에는 돈이 얼마큼 불어난다는 계산을 하더라는. 숫자에 약해서 그런지 몇 억 단위의 소리는 귀에 잘 붙지 않았다.


그즈음 우리 아이들은 십만 원이 넘지 않은 세뱃돈을 받았다. 조금 쓰고 통장에 넣었다가도 그것마저 내어놓곤 하였다. 돌아다보니 참 미안하다. 금 수저 흙 수저 이야기가 괜히 있는 것 같지 않기에.


아들에게 세뱃돈에 대하여 물었다. 맨 처음에는 보라색 천 원짜리를 받았단다. 오천 원짜리 살구 색이다가 새파란 배춧잎 같은 만 원짜리를 받았다고. 오만 원 권을 받게 되면서 평정되었다는. 더 생각나는 것은 할머니네 집에서 돌아오다가 휴게소에 들러 세뱃돈으로 ‘약’이라 이름 지은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단다. 돈의 액수가 큰 사람이 한턱을 냈다고. 어렸을 때는 이런 것도 즐거운 추억이 되었나.


지금은 카드를 주로 사용하여 현금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재래시장이나 현금으로 계산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은행에 들러야 하는 번거로움에 그냥 큰 마트를 찾는 경우가 흔하다. 모르는 새 종이돈이 전자화폐로 자리를 내어주었다. 가만 들여다보면 숫자들이 이쪽저쪽으로 자리를 옮겨 다니는 느낌. 무리 지어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같다.

노후 준비를 위해 주식을 공부하고 있다는 친구를 만났다. 돈 나무를 키우기 시작했다며.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중이라고. 열심히 배우라거나, 조심하라거나 응원을 할 수 없었다. 동생이 주식을 잘 못하여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아우가 주식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는 꺼내지 못했다. 은행 이율이 낮아진 뒤로 너나없이 주식으로 수익을 내려하고. 전문인한테라도 맡겨 재산을 불려 나가려는 듯하다.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는 소식도 있으니 어떤 것이 맞다 틀리다고 할 수 없는 어리둥절한 시절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 명의로 된 재산이 많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아무 걱정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도 된다는 것인가. 없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가 싶지 않음을 되짚어 보게 된다. 부모 잘 만나는 것도 복이라고 하지만 어떤 것이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을지.

딸내미 친구는 먼 뒷날 그 귀부인처럼 브이아이피 대접을 받으며 살아갈는지.


*잠시 쉬어가려 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빨간 꽃에 대한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