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줄이 길다. 식권은 샀는데 영수증만 가지고 서 있다. 관리하는 아저씨가 영수증 말고 식권을 가져오세요 한다. 학교 식당에서 밥을 한두 번 먹은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이고. 푸르스름한 식권은 없고 희멀건 카드 영수증만 손에 들려 있다니. 얼른 식권 발매기 앞으로 가본다. 내 식권은 발이 달렸는지 달아나 버리고. 어쩔 수 없이 다시 식권을 사서 점심을 먹을 수밖에.
이른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는 얼굴이 보인다. 보이지 않는 자리로 가 앉는다. 속으로 저 친구와 점심을 먹을까 했지만 그 생각은 금방 스러졌다. 그래 식권을 두 번 끊었나 싶으면서도 어리숙한 내 모습에 실망스럽다. 혼자이고 싶은 시간에 누군가를 알은체하기 싫다.
언제부터였을까. 내 쪽에서 반가워하는 것을 잘 못한다. 무엇이 내 마음을 움츠러들게 했는지. 얼굴을 맞닥뜨리지 않으면 슬며시 모르는 척 지나가고 싶은. 어느 날, 대여섯 발자국 앞에 엄마와 아들이 걸어가는데 아는 사람들이다. 순간 마음이 갈팡질팡. 걸음을 재촉하여 알은체를 해야 하나, 피하였다가 가나. 길을 돌아왔더니 벌써 보이지 않는다. 아마 가까이 있는 심리치료센터에 간 것이라 짐작해본다.
내 마음에선 그이를 진즉부터 밀어내고 있었다. 그분 딸아이가 네 살이었을 때. 아이를 재워놓고 언니랑 찜질방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아무 거리낌 없이 했다. 딸아이가 자폐기가 있다면서 그럴 수가 있나 싶었다. 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왜 말하지 못했을까. 선을 긋고 밀쳐내기나 했지.
그녀의 아이들이 다 컸다. 딸만 아니라 아들도 심리치료실에 다니는 것을 보면 고생이 지긋한 것 같다. 아무도 그 맘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거니와 생채기 난 속을 모른다. 아이들로부터 놓여나야 할 시기인데 끝도 없이 가야 할 길. 어쩌면 사는 내내 함께 해야 할지도. 어릴 때 오롯이 같이 해 주었으면 어땠으려나.
장애 아이들과 살아 보지 않는 한 누구도 아무 말할 수 없다. 내면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내어 나누지 못한다. 한시라도 무지근한 감정에서 놓여날 수 있는 날이 있기는 할까.
나의 시절에도, 풋풋하여 누구라도 알은체 하며 밝고 명량하던 때가 분명히 있었는데. 그 맑음의 계절은 어디로 가버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살짝 나를 숨기고 싶은 그늘이 생겼다. 마주치지 않으면 슬며시 지나가는 얄궂음. 양심에 가책이 되어 수굿하게 고쳐보려 한 적이 몇 번이었는데.
살아가는 일에 점점 자신이 없어지면서 나는 작아지고. 나이 들어 학교에 다니는 것도 이런 심리가 작용한 것은 아닌지.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하여 선택한 것은 아닐까. 뭐라도 하고 있다 안심하고 싶어서. 다행히 즐겁게 할 만하니 잘한 것이라고 나를 부추긴다. 끝까지 잘해 내기 위한 주문 인지도 모른다.
거북한 사람을 알은체 하지 않은 것을 내성적이어서 그런다는 핑계는 그만. 나를 끄집어내야겠다. 버릇으로 단단히 더 굳어지기 전에. 반갑게 밝고 명량한 모습으로 인사하는 나를 마주하고 싶다.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첫 자락은 얼굴 보며 웃는 것에서부터 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