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보낸 것 있나요?” 가족 톡 방에 알림이 뜬다. “왜?” “택배가 몇 개 왔는데 발신인을 모르겠어요.” “보낸 것 없는데”
한참 있다가 “아, 나도 택배 받고 싶다” 좀 뒤에 큰 딸이, “엄마 스카프 하나 시켰어요.” “스카프 많아, 쓸 일이 별로 없으니 취소해라” 했더니 알겠다며 “뭐 받고 싶은 것 있어요.” 묻는다. “글쎄” 하다가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느라 까먹는다.
받고 싶은 것이야 헤아릴 수 없는. 꽃을 심기에 알맞게 배합해놓은 야생토와 프릴이 들어가 있는 토분이 받고 싶다. 작은 빈 화분이 개당 삼만 원이 넘어 차마 입을 떼기 뭣하다. 옷이 날개라는 말은 비단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닌 듯. 나무나 꽃에게도 맞는 옷을 입혀야만 빛이 나는 것 같다.
다음날 초정리 탄산수가 온다. 이런 것을 왜 보내? 했더니 엄마가 좋아하는 콜라 대신 마셔보란다. 그다음 날은 쓸데없는 선물이라고 써진 자그마한 상자가 배달되었다. 뜯어보니 등 푸른 생선이 들앉아 있다. 이게 뭐야 하고 보니 볼펜이다. 얼마나 생생한지 비린내가 맡아지는 것 같다.
삼색 볼펜을 사러 갔었다. 수두룩한 필기구 중에서 모양이 맘에 든 것을 내미니 오천 원이라는. 뭐가 그리 비싸요? 하며 천오백 원짜리를 샀다. 빨간색이 필요해서 사 온 것인데 나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비싸다고 퇴박 놓은 것으로 바꿨다. 기껏 엉덩이 좀 붙여 공부하는 흉내를 내려했더니. 맥이 끊겨 커피를 마시고 걷기도 하며 시간을 실컷 보내고 자리를 잡는다.
생선 볼펜은 팔딱 뛰어오를 것 같다. 딸에게 비린내 나는 것 같아 하자. 엄마 학교 가서 그 볼펜 쓰면 재미있겠다며 웃는다. 며칠이 되었으나 아직 볼펜을 잡아보지 않았다. 필통 안에도 잡아넣지 않고 가방 맨 앞에다 고이 모셔 두었다. 기회가 되면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에게 하나씩 건네 보려고. 물건을 사면 닳아질 때까지 손에서 떼지 못한다. 삼색 볼펜이 명을 다하려면 당당 멀었으니 그때쯤이면 정어리 냄새 좀 삭아 있으려나.
쓸데없는 선물이라고 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 딸에게 물어보았다. 약간 엉뚱하고 재밌는, 웃자고 보내는 것을 쓸데없는 선물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어놓았다는. 맥주 따라 마시는 모자, 앞이 안 보이는 선글라스, 맨발 모양의 슬리퍼 등. 엄마에게 가슴이 불뚝불뚝 튀어나온 것 같은 티셔츠를 보내려다가 간신이 참고 그나마 볼펜으로 보냈다고.
갑자기 기분이 상쾌해졌다. 다른 이들도 웃고 싶어서 이런 장난 같은 선물을 보내는구나. 쓸데없는 선물이 있나, 쓰기 나름이지.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사람을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물건. 웃음을 폴폴 피워낼 수 있는,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요새 부쩍 필기구와 노트에 애정을 갖는다. 딸 성화에 못 이겨 물고기 볼펜으로 적고 있으면 동구란 까만 눈으로 나를 째려본다. 눈두덩에 빛이 반사하여 무지개도 띄운다. 필통에 한 마리 들여야겠다. 웃음이 고플 때 한 번씩 꺼내보며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참으로 쓸모 있는 물건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