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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by 민진

바람 속에 찬 숨이 들어있다. 해 까지도 나왔다 들어갔다 하던 시샘달의 어느 날.


어머니를 뵈러 올라가면서 아들 졸업 축하도 하려고 약속을 했었는데. 코로나로 어머니가 격리 차 병원에 들어가시므로 계획이 바뀌었다. 생각이 두 갈래였다. 아들만이라도 보러 가야 하나. 어머니를 보러 가기로 했던지라 그냥 있어야 하나. 나야 아들 학교에 가 보았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아 서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얼른 결정을 못하고 미루고만 있었다. 어머니 얼굴을 못 보는데 아들 때문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하는지 망설임이 한없다. 와도 되고 오지 않아도 괜찮다던 아들이 마음을 바꿔 올라오라고 한다.


푸른 기운이 돋지 않아 앙상한 나뭇가지들만 바람에 흔들리고. 풋풋하게 몰려다니는 학생들이 교정에 그나마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아들과 우리, 아들 친구와 그 부모님이랑 사진을 찍으러 여기저기 거닌다. 요즘 내가 사진을 찍으면 자꾸 흔들린다. 그래도 아쉬워 몇 장 찍어 본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부지런히 여기 서라, 저기로 가라, 앞으로 와라, 좀 뒤로 물러나라, 요구가 많다. 나는 그냥 내 맘대로 찍을 뿐 말이 없다. 실력이 없으면 중간을 가기 위해서라도 조용히 셔터를 누른다.


남편이 찍은 사진을 보니 뭘 잘못 만졌는지 눈 감은 사진이 많다. 박자 감각이 떨어지기는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닌데. 이상하다. 너무 잘 찍으려 하다 보니 그런가. 오히려 내가 찍은 사진이 건질 것이 있다. 모자를 높이 던지는 사진이 볼만하다. 아들도 그 사진이 잘 찍힌 것 같다고. 친구들 프로필에 사각모자를 던지는 사진들이 올라왔는데 자기 사진이 그중 났다고. 봉사 문고리 잡았는지 모르지만 기념이 될 만한 순간을 잘 잡아냈다니 기분이 좋다.


내 맘에 드는 것은 아들 뒷모습이었다. 사진을 보여주면서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한마디를. 거울로 앞모습은 보되 뒷모습은 오롯이 남에게만 보이며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누구든 가지런한 발걸음처럼 뒤태가 단정하고 기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연못을 지나 추억의 공간에서 몇 컷 하고 돌아 나오는데 외제 검정 승용차에 이런저런 말잔치가 열렸다. 흰색의 어휘들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걸어온다. 내가 차 사진을 찍자 안 좋은 말도 많은데 찍으면 어떡하느냐고. “축하 낙서잖아요. 아이디어가 좋네요. 졸업 축하해요!” 하자 “감사합니다.” 하면서 내 아들에게도 졸업 축하인사를 건넨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곱다. 기쁜 날의 좋은 말은 곱으로 배가된다.


학교에서 졸업생들에게 마스코트 인형을 준다고 가더니 감감소식이다. 그동안 일하던 학생과 사무실에 인사차 들렀나 보다. 가는 길에 인형을 받으러 간다고 했더니, 직원들도 같이 가자며 졸업한 흔적을 찾아서 바빴다는. 인형을 받으려고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며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웃는 모습이 더 재미나 보인다. 인형에 스미는 작은 마음. 자그마한 것도 소중히 여기는. 어쩌면 큰 즐거움보다 알갱이 같은 기쁨이 모여서 인생은 더 빛나는지도 모른다. 체로 치듯이 큰 재미에만 맛 들인다면, 삶이 얼기설기 구멍이 뚫리고 훠이 바람이 드나들지도 모른다. 먼 뒷날 배시시 웃을 수 있는 일들을 많이 모으는 것이 잘 사는 길인지도 모른다.


알고 지낸 이들을 찾아서 사진을 남기고 자리를 뜨는 아들이, 축구장을 찾아 사진을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