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by 민진

솜털 속에 꼭꼭 싸여 있는 주머니가 언제 열리려나. 오며 가며 나무를 바라본다. 가지마다 꽃눈이 매달려 있다. 한참을 걸리겠거니 여겼다. 작고 앙팡 져 보여 보자기가 열릴 것 같지 않았다.


봄바람이 흔들었는지, 햇살이 간지럼을 태웠는지. 백옥 같은 뽀얀 속살을 빨리도 드러내었다. 어찌 저리 우아하고 고울 수 있을까.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면 등불이 나무에 번질 것 같다가 한 입 베어 물고 싶게 부푼다. 다른 꽃을 한 수레 가져온대도 바꾸기 망설여질 것 같다.


나무에 열리는 연꽃이라고 목련이라. 붓의 끝처럼 생겼다고 목필이라. 북쪽을 향해 피어난다고 북향화. 이름도 참 다양하다.


여름에 꽃눈을 만든다. 그렇게 지극한 시간을 보내야 꽃이 피어나는가 보다. 찬 계절에 꽁꽁 싸매고 있어서인지 정작 꽃이 피었을 때는 꽃가루가 적고 꿀이 달콤하지 않다고. 벌 나비를 불러들이기 어려운 줄 알아 다툼할 이 생기기 전 어서어서 피느라 꽃샘추위에 파르르 떤다.

꽃 피어나고 며칠 되지 않아 하르르 꽃잎 진다. 미련 없이 훌훌 털고 떨어지는 꽃잎들. 갈색으로 처참하다. 사람들은 지는 꽃을 곤혹스러워 하지만 더 느지막이 다소곳하게 진다고 아쉬움이 없으려나.


화려하게 피어났다가 순간 자취를 감추듯 풀썩 몸을 풀고 하늘하늘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오히려 솔직한 마무리가 아닐지. 미련 없이 떠나야 한다며, 애써 매달리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는 꽃. 목련꽃은 자기 생을 살아갈 뿐이다. 사람들은 사물을 자기중심으로만 보려 하는 것은 아닌지. 기준점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추어 생각의 자로 재고 자른다. 자기에 맞게 살아내는 것이 진실인지도 모르는데.

사람도 언젠가는 천형처럼 진다. 순서가 정해진 것도 아니다. 백세 시대라지만 축복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누군가 말하였듯이 아프지 않으면 떠날 수가 없다고 하던. 지금 생각이야 너무 오래 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마지막을 아무도 모르니 기도한다. 삶에 조금의 아쉬움이 있을 때, 자식들을 향하여 애틋함이 남아 있는 순간에. 아이들도 엄마를 향하여 그리움을 머금고 있을 때 한 송이 꽃처럼 떠나고 싶다.

바람이 분다. 앞 집 목련나무에서 꽃잎이 날려 우리 집 마당으로 날아든다. 제 갈 길을 가는 꽃잎 여정인가. 꽃이 진 자리마다 조그마한 잎눈 보따리가 쭈뼛거린다. 그 작은 잎 주머니를 살곰 열고 내미는 매무새. 이제 갓 태어난 아기 잎들을 눈여겨보았는지.

우리는 무엇이든 가장 고울 때만 기억하고 싶어 한다. 빛과 그림자는 늘 같이 다니는데. 꽃이 져야만 꽃보다 더 소중한 씨앗이 맺히는 진리. 목련이 씨앗이 있느냐고.

희망처럼 차오르는 목련 잎을 보는 즐거움이 간절해진다. 시원시원한 잎맥을 자랑하는 연둣빛 그리움. 이파리 피어나는 사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