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눅눅했다. 거치는 일이 많다 보니 여유가 없다. 무표정해지고 바쁘기도 하여 넉넉함을 잃어버렸다. 사월만 되면 T.S 엘리엇의 시처럼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되뇌며 살아왔다. 희한하게 보릿고개와 맞닥뜨린다. 시인이 노래한 뜻과 내가 느끼는 고통의 무게는 다른 것이겠지만.
눈물 같은 꽃들이 피어난다. 섬세함에 감정이입이 된다. 시원시원한 꽃보다 애틋한 것들에 끌리는 나이. 소소한 꽃을 보듯 나를 본다. 주인공은 못하고, 지나가는 행인 일이삼 아닐까 하며.
왕 제비꽃의 첫인상이 다이아몬드의 눈물 같다. 미국 드라마에서 수사 극을 볼 때에 제3세계 아이들의 고사리 손에서만 이루어지는 공정이 있었다. 오래되어 가물가물 하지만 그때 아이들의 눈을 일부러 멀게 하였던가. 초콜릿을 가공한 아이들은 초콜릿을 먹어보지 못했다는 슬픈 이야기. 가슴 저미는 일들은 여러 모양으로 우리 곁에 머문다. 아픔은 아픔으로 끝나고 무엇을 어떻게 해주지 못하는 나약함만 확인할 뿐. 그럴 때마다 새가슴이 되어간다.
아이들의 슬픔처럼 눈물 빛깔의 꽃. 참꽃마리는 이슬방울 색으로 고아하게 피어난다. 안개꽃의 자잘한 이야기들은 끝이 없고. 양지꽃에 자리를 내어주려 했던 뱀딸기 넌출이 노란 꽃을 매단다. 생명 있는 것들의 춤사위. 저마다 소중하다고 너울처럼 하늘거린다.
사월 마지막 주가 되자 용케 잘 버텼다는 안도감. 차분하게 정신이 말끔해진다. 내가 나로 돌아온 듯하다. 뒤죽박죽이던 마음이 정리되는 시간. 욕심을 내려놓는다. 아픈 감정들도 감당할 몫이라 수긍하면 수월해지고 먼 산처럼 너그러워진다. 순수함을 목표로 살아내기로 다짐한다. 다른 사람의 어깨 높이가 아닌 내가 기준이 되기로.
동서랑 통화하는데 어머니를 한 번도 뵈러 오지 않았다는 말이 주먹처럼 훅 들어온다. 코로나에 전염되셔서 기회를 놓쳤었는데. 금요일 같이 가자고 한 남편은 목요일 혼자서 다녀오고. 실험이 잡혀 있고 힘들어했으니 나를 생각해서 그랬을까. 한마디가 가시처럼 박힌다. 동서는 두 주마다 일요일에 어머니를 돌보러 다니느라 애쓴다. 형님은 삼십 년을 모셨으니 괜찮다고 하는데도 걸린다.
오월이 오면 한 번 뵈러 가야겠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누군가에게 떠넘긴 것 같아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마음으로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부채감일까. 묘한 감정의 출렁임. 웃는 것 같았던 얼굴이 달라져 간다. 표정은 마음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꽃을 보고 있으면 어린양처럼 순해진다. 빛깔과 모양, 청초함의 오묘함에서 잡다한 생각들이 스러진다. 여리여리 눈만 맞추는 것들이 힘이 세다. 거친 마음이 잔잔한 물결이 되게 한다. 시냇물 한 줄 흘러들고 고운 새소리 귓바퀴를 헤집는다. 해가 지날수록 꽃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그 언저리를 맴돈다. 꽃과 함께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