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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화단에 놓여있어서

by 민진

할 수 있는 일만 해야지! 남의 손 빌려 가면서 까지 하지 말라는 소리에 명치끝이 아리다. 아쉬운 대로 막내 동생을 불러 시키고, 딸에게 부탁하여 꽃을 심는다. 그만 좀 하라고 한 마디씩 거든다.


아궁이에 불씨 살아나듯 꽃들의 손짓에 그만 넋을 놓는다. 이전 아파트 경비 아저씨는 아예 꽃을 심지 못하게 했다. 바늘 한 개 들어가지 않았다. 새로 온 경비아저씨에게 조심스레 화단에 꽃을 심어도 되느냐 물으 괜찮다고. 날개가 돋아나는 듯.


교통사고로 휠체어와 한 몸이 된 친구는 그날부터 꽃을 사 날랐다. 수국, 청 매화 붓꽃, 패랭이 수도 없는 꽃들이 나비처럼 내려앉았다. 농장에 가서 조팝, 불두화를 사 나르느라 마음이 바빴다.

작년에 삽목 되어 온 우리 집 불두화는 겨드랑이에서 꽃숭어리를 여섯 개나 내어 주었는데 친구가 산 덩치 큰 것들은 왜 꽃을 보여주지 않는지.


어느 날 꽃씨를 샀다고 자랑을 한다. 나에게 심어주라고 할까 봐 모른 척한다. 다 좋은데 물 주기가 쉽지 않아서. 호수가 멈추지도 않고 길어다 물을 주려니. 사는 곳도 아니어서 서먹하고. 경비실 안에 흙 발자국이 찍히는 것도 조심하느라 신경이 곤두선다. 조절장치가 고장이 나 물 조절이 안 어 친구가 호스를 잡고 받은 물을 떠다 준다.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촉촉이 내린다. 꽃씨 생각이 퍼뜩 났다. 전화로 꽃씨를 심자고. 자기는 생각도 못했다며 회사 갔다가 일찍 오겠다고 한다. 부탁하기가 얼마나 어려우면 비가 내리는데도 꽃씨 심을 생각을 못했을까. 언젠가는 심으려니 했다나.


접시꽃, 분꽃, 백일홍. 어렸을 때 집집마다 피어났던 동심의 꽃씨. 마음껏 뛰어놀던 그때 그 시절의 꽃이 가슴에 그리움처럼 박혔다. 마당가에 꽃씨를 심으시던 아버지의 모습도 아련하다고.


땅이 촉촉하여 심는 시간은 삼십 분도 되지 않았다. 싹을 틔어 자라면 솎아서 옮겨 심어야겠지만 그때도 비 오는 날로 예약한다.


친구가 성의라고 돈을 보내왔다. 수고비는 꽃으로만 받는다고 했는데. 우리 집 이름 있는 제라늄들은 그 친구가 준 것이 여럿이다. 꽃 친구로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일 뿐. 나의 마음이 가격으로 매겨진다는 것이 어색하다. 수고비를 돌려주고 으아리를 선물로 받는다. 작년에 받아왔던 클레마티스 씨는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마음을 같이하는 한 사람의 응원이 필요하다. 그럴 때는 속없는 사람 취급을 받아도 이겨낼 수 있다. 꽃 보고 싶은 이쁜 욕심이 눈치를 물리쳤다. 수많은 꽃송이들이 방싯거린다. 친구의 용기에 나의 마음이 기운다.


나는 모아심기를 하고자 하면 친구는 섞어 심고자 한다. 날마다 꽃을 보고 기뻐할 그이의 생각에 따른다. 내 집의 내 꽃이야 내 마음대로 하지만 친구 화단의 꽃은 친구의 뜻을 따라 심는다.

정원처럼 온통 꽃으로 환하다. 사진을 찍어 카카오톡으로 보낸다. 언제 사진까지 다 찍었느냐 기에 유정 씨 마음이 화단에 놓여있어서 한 컷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