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정원을 돌보기 위하여 몇 개의 손이 필요할까. 시민정원사 교육을 받을 사람을 모집한다기에 급하게 서류를 낸다. 자격증과 경력 증명서 난이 비어있어 무색하다.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처럼 여겨지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인지. 되고 안 되고는 끝까지 가보아야 알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면접을 보는 날 맨손으로 가기 뭣해서 원예과 4학년 재학증명서를 떼어 간다. 세분의 면접관이 기다리고 있다. 자격증이나 경력증명서를 달라고 한다. 재학증명서를 건네면서 어떤 자격증이나 경력증명서를 대신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절박하면 마음의 힘이 세 진다.
농사는 해 봤습니까? 텃밭농사를 십 년 넘게 지었고, 지금은 초화류를 키우고 있습니다. 월아 산에 가봤습니까? 네. 화단을 어떻게 꾸밀 것입니까? 휴케라가 심겨 예뻤습니다. 그처럼 무늬 종으로 높이별로 맞추어 어우러짐을 나타내어 보고 싶습니다.
이십 오명 모집하는데 칠십 오명이 왔다. 3대 1의 경쟁력. 남자분들은 거의가 조경 관련 일을 하는 분들 같다. 오지 않는 사람과 몇 사람을 빼고, 모든 사람들을 뽑았을 가능성이 크다. 안되면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조마조마했던 것이 무안해진다. 나의 모습이 면접관이 보기에 어땠을까 싶어 얼굴이 달아오른다. 시민들이 할 일이 많아질 수도 있겠다는 바쁜 느낌. 국가정원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작이다.
꽃집을 하는 선배도 같이 강의를 듣기로 했다. 창원에 사는 그이가 화원을 처음 열었을 때 손님은 없고, 비싸게 주문한 꽃이 시들어 간다. 꽃들이 물구나무서기를 하여 서서히 말라가는 것이 싫어서 지금은 꽃을 말리지 않는다고.
그 와중에도 커다란 꽃바구니를 두 개씩이나 주문해 주던 온천 여사장님이 있었다. 꽃을 보아주는 눈이 있었다고 할라나. 단골이 많이 생겨도 여전히 고마운 분. 꽃가게에 자주 들른다. 장미가 이렇게 예쁠 수 있냐고 감동하는 모습이 여간 곱다. 온천에서 꽃바구니를 본 분들이 주문을 해오고. 단골이 늘어나 바쁜 시간이지만 처음 사랑을 잊을 수가 없다는.
처음이라는 말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나도 처음 하는 일이 요새 참 많다. 시작이 절반이라더니 새록새록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감사하다. 처음을 지나 알차게 완성되는 시간에 서고 싶다.
자신을 고성의 그레이스 정원의 주인이라고 했다던. 잘 모르니 그런가 보다 했는데. 시민정원사 양성 강사에 그분의 이름이 있다며 놀란다. 실습을 그레이스 정원으로 갈 것 같은 즐거운 예감. 꽃집의 그녀는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데. 인연의 갈래는 점점 넓어져 가는가.
이야기를 듣자 내 마음이 뛴다. 그레이스 정원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세 번이나 들른 곳이다. 파르란 수국 밭을 중심으로 아기자기한 정원이 갈 때마다 떠나기 싫었다. 브런치에 발행한 ‘다시 수국’이란 글에 그 감회가 적혀있다. 그분의 강의를 얼른 듣고 싶다. 앎은 확장되어 가는지도.
꽃집 단골과 주인이 아닌 강사와 시민정원사 교육생의 만남. 나는 그 꽃집 사장과 아는 사람으로 살짝 다가가 웃음 한번 웃을 수 있지 않을까 김칫국부터 마신다. 정원을 이십 년 넘게 가꾸어 사람들에게 돌려준 이들은 어떤 삶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