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친구는 첫아들이 큰 병을 앓아 네 살 때 하늘나라로 보냈다. 자식을 떠나보낸 심정을 당하지 않는 이가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로 인하여 호스피스 일을 하게 되었다. 그 뒤 은혜로 아들 셋을 얻어 건강하게 자랐다. 큰 아이는 의학대학을 나와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얼마나 부럽던지.
의사 아들을 두었으니 열쇠 몇 개를 받았느냐고 농담 반 진담으로 물었다. 아파트 열쇠 한 개 받았다면서 그렇게 썩 기뻐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은 내 기분 탓이겠지. 아이 엄마는 아들이 쉴 시간도 없이 성급하게 결혼을 한 것이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학교도 멀리서 다니고, 군대 가느라 헤어져 있었는데 나오자마자 바로 가정을 꾸려 서운한 것 같다며. 서둘러 혼담이 진행되는 바람에 아들과 오붓하게 정을 나누지 못하여 서먹하다고 한다. 앞만 보고 달려왔으므로 여유를 가진 뒤에 웨딩마치를 울려도 될 터인데 싶어.
호스피스 일에 매달리느라고 자식들과 제대로 시간을 보내지 못하였다는 아쉬움은 안타까운 마음을 더 자아내는지도 모른다. 마침 코로나여서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 이때만이라도 그간 갖지 못하던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면 했는데. 잘난 사위 감을 얻는다 싶었는지 틈을 주지 않았다. 내 아들인데 사돈네 아들이 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은 속내가 좁은 것인지. 아들이 아픈 손가락처럼 느껴진다.
그이들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많은 것을 가졌다. 가만 생각해보니 아들 부자인데 딸이 없다. 옳다구나 하면서 딸들을 부른다. 아빠 친구 분에게 인사하라고. 딸 둘이 다소곳이 인사를 한다. 내 속내가 빤히 읽히는 대목이다. 아들이 셋인 분들은 또 아들을 낳을까 봐 더 이상 낳지 못한다고 하던 말이 떠오른다. 딸을 낳을 확신만 있다면 낳고 싶은데 하면서. 생명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그저 주시는 대로 받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분의 아내는 남편과 함께 일을 하느라 간호사 자격증을 따고 호스피스 일을 같이 했다. 이제 나이도 들고 힘에 부친다. 지난날을 돌아보니 아들들에게 미안해진다. 인물이면 인물, 직업이면 직업 뭐하나 빠지는 것이 없어서 오히려 빨리 부모 곁을 떠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형의 빈자리를 의술로 펼치기를 원했었다. 그 뜻이 얼마나 이루어져 갈지. 이 또한 부모 마음이다. 이왕에 떠날 것인데 미련을 두어서 무얼 하겠는가마는 사람 마음이 안 그렇다. 내 품에 아직 있어야 할 자식이라고 욕심을 내보지만 소용없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고 되도록 빨리 마음에서 떠나보낼수록 기대치를 내려놓을 수 있는지도.
마음을 가다듬는다. 다시 시작하는 호스피스 일에 몰두를 하자. 환자들은 거의가 두 주안에 천국으로 가신다고. 그들의 마지막 삶을 보면서 세상에 미련을 거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머물다 보니 인생살이가 초연해진다. 그럴지라도 자식의 일에는 좀체 잘 다스려지지 않는 속내를 누가 알아주랴. 자식을 키운 어미의 심정으로 그이를 헤아려본다. 어미 마음은 다 같을 것이기에 말하지 않아도 전해져 온다.
우리 아이들은 아직 아무도 결혼한다고 하지 않으니 애가 탄다. 고물고물 한 아기를 보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속으로 나는 언제나 손주를 안아보려나 싶어 한숨이 다 나온다. 어쩌면 그녀의 감정은 행복한 비명 인지도 모른다. 갖은자와 갖지 않은 자의 차이점일 수도 있다. 손주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자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빨리 낳으려 하느냐며 아직 멀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큰 딸은 결혼 생각이 없다고 대놓고 말한다. 그러지 말라고 하면 분위기가 싸해진다. 어느 날 좋은 사람이라고 데려오기를 바라지만 묘연하다. 인생의 중요한 일이 언제나 마무리될까 싶어 한숨이 길다. 자식은 내 맘대로 할 수가 없으니 내가 안 되어 보이고 아픈 손가락처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