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은 동그랗다
모가 나지 않는 하나의 노래
투두둑 투두둑 빗방울이 들자 수많은 작은 원들이 파문을 일으킨다.
꽃과 나무에게 내리는 비는 씨를 영글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한다. 동그라미는 모가 나지 않는 하나의 노래. 온전하게 둘러진 선의 만남. 아이들이 불어내는 비눗방울이 둥둥 떠다닐 때 오색의 무늬가 아롱지듯 곡선의 완전체다. 처음으로 그리는 동그라미는 잘 그려지지 않는다. 세모 네모와 다르게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동그라미를 잘 그리게 될 때에 자연스럽게 하트도 그릴 수 있게 된다. 동그라미의 윗부분을 살짝 오므려 주고 밑에서 꼬리를살며시 잡아 빼내야 사랑표가 된다.
몇 년째 키워 온 율마를 막대사탕 모양으로 기르고 있었다. 나름 만족했다. 어느 날 보니 바람이 통하지 않아서 가운데 부분이 갈색이 된 잎들이 보였다. 마른 부분을 잘라내고 빈곳이 생기도록 철사로 모양을 만들어 가지와 가지 사이에 끼워서 한 달 정도 있었더니 바람이 잘 통하게 되었다. 그 대신에 율마의 모양이 어색해졌다. 고민하다가 전정가위를 들었다. 싹둑싹둑 이발사가 된 것 같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남편이 이발을 해 주었다. 기계 때문인지 솜씨가 없었는지 아들들은 머리카락만 자르자하면 싫어했다. 한 시간씩이나 걸려 완성한 모양은 둥근 듯 아닌 듯 했다. 바가지 머리를 휘날리며 다니던 아들들이 머리카락을 깍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이발사 노릇은 끝났다. 내가 가위를 들어보니 남편이 이해가 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면 자꾸 짧아지고 약간 틀어진 것 같아서 저쪽을 쳐내면 또 이쪽이 바르지 않는 것이다. 결국에는 맘에 쏙 들지는 않지만 이정도면 되었지 하는 마음으로 가위질을 멈추는 것이다.
어떤 모양을 만들까 고민하다가 사랑 표를 만들기로 한다. 그래야 잘려나가는 부분을 줄일 수 있고 하트모양은 만들어 봐서 자신이 있었다. 쓱쓱 싹싹 가위질을 한다. 맨 위 틈이 난 곳을 둥글리듯 자르고 쭈뼛거리는 것들을 다듬는다. 아직 사랑표의 모습은 갖춰지지 않았다. 율마가 새잎을 내밀면서 그리는 사랑표로 꾸몄으니까.
율마아들에게 어때? 하트 같아? 좌 뇌 우뇌가 나눠진 것 같아요. 기다려봐 한 달쯤 되면 제대로 일거야. 향기로운 율마를 다듬다 보니 동그라미가 변하여 하트가 되었다. 살아가면서 율마처럼 필요 없는 부분들이 잘려나가고 각이진 모서리 부분들이 깎이는 아픔을 이겨낼 때에야 우리는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수많은 빗방울들이 하늘에 머물기만 한다면 땅은 먼지만 날릴 것이다. 대지에 나무와 꽃들과 산에 내리는 빗방울들처럼 살포시 어루만지듯 삶을 살 수 는 없을까. 둥글둥글 둥글려진 생각과 푸근하게 받아들이는 넉넉함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의미를 이루어 내느라 여태껏 힘이 들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에 겸손과 기다림은 인격의 동그라미를 그려가는 연필과 같은 것이지 않을까.
비는 하늘에서부터 직선으로 내리꽂히지만 정작 떨어질 때는 동그라미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