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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Jul 30. 2022

   포만감

 뭔가를 하지 않으면 한없이 나 자신이 초라하던. 보이는 것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초조함에 갇히고. 지금도 가끔 그런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강박처럼 나를 조여 오며 성과를 요구하고 있는 나 자신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누군가로부터 너 잘못 살고 있다고 손가락질을 받을 것처럼 가난한 정신에서 벗어나련다.


 그대로의 나를 즐거워하고 싶다. 거창한 일을 해야만 한다고 재단하는 자를 치우고. 설거지를 쌓아두고 하루 가득 책을 읽고. 이십사 시간이 모자란 듯 네플릭스로 드라마를 보고. 들랑날랑 꽃만 보느라 정신 줄 놓은 것 같으면 어떤가. 한 송이 몽글거리며 피어나는 꽃 빛깔에서 마음에 꽃물을 들이고.

 

 화초들마저 같은 것들이 없다. 모두 같아야만 된다고 강요받은 세월을 살아왔다. 같지 않으면 모자라 외돌토리가 되는 듯 모나지 않으려 버둥거렸다. 이제는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싫은 사람은 싫어하기로 한다. 괜찮은 척 억지로 끌려 다니지 않으려고 나를 다독인다. 어쩌면 더 고독해져야 하는 시간과 맞닥뜨리는 것일 수도 있다.

      

 내리쬐는 햇볕에도 순하게 서서 빛살을 다 받아내는 나무들이 가득한 곳으로 들어선다. 내가 사는 곳보다 온도계 눈금이 몇 개는 아래에 있을 것 같이 산은 푸르다. 한참을 피워 내던 수국들이 빛을 잃어가는 여름 한가운데 매주 열리는 식물교실.


 늦깎이로 다니는 원예과 교수님께서 강의를 맡으셨다. 이미 들었던 것이었으나 새롭다. 가물가물 해지는 기억 속에서 빠끔히 내다보는 내용들이어서 더 와닿는 것은 아닌지. 실제로 나무를 키우는데 써먹을 수 있어 좋아한다.

 

 시민정원사 교육생들이 또래이거나 엉가들인 것 같다. 첫날 강의에 빠졌기에 인사를 하지 못해 어림으로 짐작할 뿐이다. 다들 얼마나 강의에 집중하는지. 늦게 배우는 도둑질이 무섭다고  이렇게 배우는 공부가 진짜 공부가 아닐까 싶을 만큼. 뜨거운 여름을 지나 가을의 이우는 햇살 아래 선 것 마냥 여유 있어 그런 것은 아닐지. 버거운 인생의 행로를 지나와 자신이 해 보고 싶은 것들을 하는 것이어서인지도 모른다.


  대학 강의실 학생들은 궁금한 것이 거의 없다. 질문은 대체적으로 교수님이 하는 것으로. 그에 반해 나이 지긋한 이들의 강의실 열기가 뜨겁다. 물음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오후 한시 반부터 다섯 시 반까지의 졸기 좋은 시간대인데 꾸벅거리는 사람은 없다.


 학교 수업과는 다른 느낌. 엇비슷한 연배들이라 마음이 쭉 펴졌다. 어린 학생들과의 공부시간엔 괜히 주눅이 드는데. 한 학기 내용을 몇 시간 만에 간추려서 배워주려니 교수님 마음이 바쁘다. 옆에 앉은 친구는 코로나로 비대면 강의만 들어 몰랐다고. 교수님이 이렇게 열정으로 강의하셨느냐며 아쉬움이 배가된다. 늘 한결같았다고.  


 참으로 오랜만이다. 음식만 포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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