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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Aug 19. 2022

일주일 뒤에

  쨍하지도 않은 하늘이 달라 보인다. 햇빛 부스러기라도 닿을까 양산을 가방에 밤낮없이 넣어 놓았다. 오늘은 빛살이 따가워도 그냥 걷는다. 격리 뒤에 오는 첫 외출이라 어지러움을 느끼면서도 나를 빛 속에 내어 놓는다. 여름의 끝자락, 진초록이 뿜어내는 나뭇잎이 바람결에 춤추는 듯하고 언뜻언뜻 보이는 하늘이 보석 같다.


 커피 맛은 아직 잘 못 느낀다.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분위기만 느낀다. 사부작사부작 잎을 뒤채며 마주쳐 오는 바람은 수박 맛 같이 상큼하다. 친구와 웃음도 푸우 짓는다. 미래의 두려움도 조금씩 나누고, 젊어지는 샘물을 마시지 못하기에 옹달샘 곁 풀처럼 싱그러울 수 있기를 바래본다. 머무는 자취가 평화롭고 무탈하기를. 스러져 가는 것이 노을처럼 자연스럽고 고울 수 있다면.


 섬처럼 집안에서만 서성였다. 사도 바울은 이년이란 시간을 셋집에 갇혀 지냈다는 것을 새삼스레 떠올렸다. 책 읽는 것에 집중이 안 될 것 같다고 지레짐작하여 내리 드라마에 빠졌다. 남편과 오랜 시간 한 공간에 같이 있기도 처음이다.

 

 예방주사처럼 노년을 댕겨 맛보는 시간이었을까. 보이지 않는 피로감과 보이는 실랑이가 이어진다.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  하더라도 못마땅함드러난다. 다음 날 바로 진단을 받은 아들과 나는 일찍 격리를 벗어나고 남편은 이틀이나 뒤선다.


  스포츠 방송 소리가 집안에 가득하다. 피하여 손바닥만 한 마당으로 빌려온 책을 들고 나선다. 키를 키워 가름막 역할을 톡톡히 하는 꽃들이 있어서다. 처음으로 뜰에 나앉아 본다. 아늑하다. 생각도 못한 일이다. 변화는 알 수 없이 오는가. 책을 읽는다. 노을과 마주 보기를 한다. 하이디가 할아버지와 지는 해를 보는 순간 같은 착각이 든다.

 

  사마귀가 날아온다. 고개를 자꾸만 모로 틀며 앞발을 모아 비빈다. 무슨 말인지 읽어 내지 못한다. 곤충나라의 말을 좀 배워둘걸. 해도 주지 않는데 사마귀는 무섭다. 갑자기 측은해 보인다. 십일월쯤이면 몸에서 힘을 빼어 죽음에 이르는 것을 보았다. 너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뒤에 살피니 어디로 가버리고 없다.

 

 노랑, 빨간 장미가 여러 해 피어주더니 잎에 검은 반점이 생기고 줄기에 뭔가 이상한 것들이 돋아났다. 식물을 잘 아는 분에게 물었더니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 것이라면 흙도 나무도 모두 잘 싸서 버리라고 했다. 아깝다는 생각도 못한 채 앞뒤 재지 않고 쓰레기 봉지에 넣어 버렸다. 다른 꽃들에 옮길까 봐 겁이 났던 모양이다. 장미는 우리 집에 피지 않는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장미를 다시 들일 생각도 못한다. 아쉬움에 웨딩 찔레를 들였다. 병충해에 강하다. 이어 이어 살풋거리니 내 마음도 분홍색으로 물드는 것 같다.


 바이러스에 감염되고도 장미를 버린 것처럼 나를 버리지 못했다. 오롯이 시간을 견디어냈다. 그 호젓한 시간들이 나를 깨운다. 인생의 징검다리 하나 건넌 것 같다. 멈춰있던 생각들이 자라난다. 꽃을 바라보듯 어여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면 어떨까?


 새로운 시간 속으로 나를 들이기로 한다. 일주일 뒤에, 나는 같은데 다른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바뀌고 있다. 굳세지 않기로, 가녀린 대로 견디어내기로. 아득바득하지도 못하지만 그냥 순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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