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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Sep 03. 2022

다 때가 있는 것을

  지중해 근처 끝도 없이 펼쳐진 라벤더 꽃밭을 사진에서 보았다. 파란색인지 보랏빛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도 무슨 색이라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른다.


 칠월 초 거제 라벤더 공원에 간다기에 사진 속 허브 꽃밭을 상상했다. 오월 유월이 꽃이 머무는 시간이었던 듯. 꽃 다 지고 쑥 빛의 잎들만 무심하게 서성였다. 버들 마편초와 다른 꽃들이 피어있긴 했지만 이 빠진 느낌이었다. 인솔하신 선생님은 잘 살피라고 하지만 마음이 떠서 딴생각만 했다.

 

  교정에 맥문동 꽃이 피었다. 보랏빛인지 파란색인지 모르겠던 라벤더와 비슷했다. 무리 지어 있는 곳을 찾았다. 나무 밑이라 한창이었다. 마음이 보랏빛으로 물든다. 걷고 또 걸어도 걷고만 싶은. 비 내리는 날은 무엇이든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생각도 행동도 가만가만하다.


 지난해도 맥문동 꽃을 볼 것이라고 기대로 부풀었었다. 심긴 지 삼 년 정도 되어야 실하게 꽃이 피어나는가 보다.  칠월 어느 날 맥문동 꽃 피었나  보았다. 꽃대 하나 솟쳐내고 있지 않았다. 햇살은 따가운데 거니는 발길이 무색하다는 생각을 했던 듯하다. 초록 잎들만 다보록해서 같이 가자고 했던 친구에게 무안한 마음이 앞서고.

 

 계절은 가을로 거듭났다. 햇살이 비추는 곳의 맥문동들은 연두 빛의 열매를 달았거나 꽃 색이 옅어졌다. 아름드리나무 밑은 맥문동 꽃 숲이 되었다. 지중해의 라벤더 밭 부럽지 않다는 생각은 어쭙잖은 것일지라도  학교 뜰에 신비를 품고 피어난 꽃무리에 반할 수밖에.

 

 얼마 전 남편에게 소나무를, 가져왔던 곳으로 돌려주어야겠다고 했다. 자기가 돌볼 것이니 그냥 두라고 한다. 그러고선 이발을 해 놓았는데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잘했다며 이 나무 저 나무 손 봐달라고 부탁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좋았다.


 어느 날 미스 김 라일락과 몇 나무를 사그리 잘라 놨다. 손대면 안 되는 것이었다. 보기에 탐탁하지 않더라도 기다려야 되는데. 이른 봄 꽃 피려고 벌써 꽃눈을 만들어 제 몸 어딘가에 숨기고 있으리라. 잘려나가지 않는 가지의 몇 개의 꽃이야 볼 수 있겠지만 흐드러지게 보고 싶은 은 물 건너갔다. 라일락 두 그루가 한 화분에 살기에 찬바람 나면 분갈이하여 거름도 맘껏 리라고 벼르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고. 싹둑싹둑 시원하게 야멸차게도 잘라 놓았다.

 

  나한테 물어보아야지! 잘한다고 하니까 맘대로 하면 어떡하냐고 싸 붙였다. 고스란히 두 해를 기다려야지만 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못할 일이다. 저의 잘못이 아닌 집사의 실수이지만 지루한 시간들은 자칫 그 나무를 싫어하게 되기도 한다. 나무는 사랑이 그리운 나머지  먼 곳으로 가기도.


  넘치게 화를 냈다. 서로에게 찬 기운이  돌았다. 나중 ‘잘하려고 그런 것인데 성내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가슴의 응어리가 풀어지려면 당당 멀었다. 꽃순이에게 꽃은 무엇과 같을까. 노래인가. 아니면 숨일 수도. 소로시 안타까움이 넘나들겠지. 다른 꽃으로 위로가 가능하지 않다. 나무마다 제 몫의 사랑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무를 단정하게 할 때 꽃눈 생각을 미리 못했는지. 가지런해져 속이 시원하다고 좋아할 때는 언제고. 명자나무도 꽃을 몇 개만 핀처럼 꼽을 테고, 홍자단도 희미 한 미색 꽃을 밝히지 못하여 가을에 열매를 붉히지 못하겠구나. 꽃이 피어야 열매를 맺는다.


  나무들은 꽃 진후 바로 모양을 잡아주어야 한다. 낭중 아무렇게 자랐다고 가위를 휘두르면 빈 계절을 보아 내야 한다. 아픈 손가락처럼 꽃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들을 잘 참아 낼 수 있을지. 맥문동 꽃길을 걸으며  마음을 다 잡는다. 다 때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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