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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Sep 10. 2022

달을 쳐다보며

 작은 뜰에 의자 하나 내놓았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답답한 것이 내려간다. 한가롭게 하늘을 바라본다. 밤이라서 구름은 하얗게 도드라진다. 드문드문 별도 반짝인다.

 몇십 년 만에 쳐다보는 한가위 달인 것 같다. 결혼하고 딱 한번, 눈병이 유행하던 때 시댁에 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만 두고 남편과 아이들은 고향에 가야 되는 것 아니었나.  

 82년생 김지영과 비교가 될지 모르지만 어쩌면 더한 세월을 살아낸 우리 세대들이 아닐까. 남편의 능력치나 며느리의 처지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양새를 가지고 있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서글프다.

 고요하다. 달빛만이 흐른다. 푸르렀던 나무들은 짙푸른 어둠으로 들앉았다. 하늘의 신비로움이 더해진다. 구름 속으로 숨었다가 나오는 달님이 오늘따라 예쁘다. 뿌려지는 달빛이 은은하다.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았으면.

    

   굽은 등    

 몇 걸음 앞 부부인 듯, 연인인 듯 걸어가는 이들. 얘기하면서 걷는 폼이 여간 다정하다. 여인이 키가 크다. 앞으로 나아가는 아내의 등이 약간 굽다. 서로가 서로에게 맞추며 살아온 시간들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 같다. 세월이 등을 굽게 했으려나. 같은 곳을 바라보고 걸어온 아름다운 자취일 수도.


  남편의 목이 거북목처럼 나오는 것 같다. 볼 때마다 손을 등에 대며 반듯하게 하세요.라고  외친다. 사진도 찍어 보여주며 심각성을 알려주고. 스스로 노력을 해야만 발라지기 때문이다.

 사춘기 때 세상 고민 혼자 짊어진 것처럼 땅만 쳐다보고 다녔던 적이 있다.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들이 등이 굽었다고 했다. 그 말이 싫어 필요 이상으로 등을 젖히고 다니려고 했다. 등이 굽었다는 말이 쏙 들어갔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걸음걸이가 동그라미로 그려지는 을 본다. 나도 그렇게 될까 봐 부러 반듯하게 걷느라 신경을 쓴다. 무릎이 아파 관절에 문제가 있나 병원을 찾았다. 뼈에 이상이 없다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어른들의 걸음걸이가 이상한 것은 뼈가 휜 때문이란다. 바라지 않더라도 엉거주춤 걸어야 할 때가 온다는 사실이.

      

       엄마 드시라고요     

 조용한 버스에 갑자기 높이 뜬 목소리가 울린다. 돌아보며 눈총을 싸주고 싶다. 차에 ‘휴대폰은 용건만 간단히 란 말을 저이는 못 보았나.’ 목소리가 특이하고 남이 듣든지 말든지 눈치를 모른다. 어머니와 아들과 대화이다. 목소리 임자 얼굴은 모르겠지만 십 대나 이십대로 추측을 했다. 아들이 물건을 시켰는데 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인 듯. 잘 이용하던 택배가 아니어서 궁금증이 일었던 것 같다. 거기에 무엇인가 추가되어 온 것이고. 택배를 뜯어본 것 같다. 보통은 자기 택배 아니면 아들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가. 어디만큼 왔는지 물어보는 것 같다. 정류장 이름을 알려주는 것을 보면 내릴 곳에 가까운 모양이다. 나는 곧 들어올 것이라면 전화하지 않을뿐더러 필요한 것 샀겠지  알려고도 않는다. 냉정한 것 아닌가 나를 돌아보게 된다. 어머니가 택배를 뜯어보았다고 기분 나빠하지도 않고 친절하게 설명을 보탠다. 다감한 사이인 것이 분명하다. 하는데 단물이 묻어나는 것 같다.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이다. 연인이 사랑하면 작은 거 하나 놓치지 않고 알려주고, 알고 싶어 하는 그런 느낌. 부모 자식 간에도 그럴 수 있다니. 마음이 다사로워진다. 혹여 어머니가 귀가 잘 안 들리시나! 이제는 눈총을 거두고 큰 소리를 이해까지 하려고 든다. ‘그거 엄마 드시라고요’ 한마디에 내 마음이 녹는다. 말하지 않아도 어머니 좋아하는 것을 자기 물건 주문할 때 시키는 아들의 정이 느껴진다.

 말소리의 주인인 남자가 내렸다. 내 눈이 알아서 따라간다. 분명 앳된 목소리라 여겼는데. 그이는 슬리퍼를 끌고 반바지 차림의 사십 대의 얼굴이다. 목소리에 세월이 깃들지 않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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