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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Nov 26. 2022

목화 송이 이야기

  눈꽃송이들이 피어나 환하다. 가까운 곳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목화송이들이 소복하여 찍었다고 올라온 사진이다. 젊은 꽃집을 하는 아티스트는 절화로 된 목화 꽃을 땅에다 꽂아 놓은 줄 알았다고. 가을이면 목화송이로 꽃꽂이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드는 상상인가.


 어렸을 때 집에서는 목화를 심었다. 그 두꺼운 껍질을 뚫고 싹을 틔워내다니. 미색이나 연분홍으로 새색시같이 야들야들한 꽃을 피워낸다. 꽃잎이 지면 둥그렇게 초록 사탕 같은 다래가 매달렸다. 그걸 따서 먹으면 달짝 지근하여 손이 자꾸만 갔다. 다래가 단단해져 부풀면 하얀 솜이 되는 신기한 일이 가을에 벌어지곤 했다.

 기억을 끄집어내게 보내온 사진 한 장. 마음은 벌써 그곳으로 달려갔다. 거기가 어디냐고. 꼭 가보겠노라고 말하지만 나에게 다짐하듯 답을 보낸 것이다. 꽃집을 하는 그이는 같이 빨리 가보자고. 젊다는 것은 밀고 나가는 힘이 있다. 시민 정원사 강의가 있는 날이 내일모레니 좀 일찍 만나 가기로.


  멀리 있는 그이는 초등학교 아들이 아파 병원에 데리고 간다고 좀 늦는다 하여 우리 먼저 다. 시내에서 좀 떨어져 있어 늦가을의 모습들에 끌리며 가다 보니 하얀 것들이 온 집을 빙 둘러싼 모양새다.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목화송이. 꼭 누군가 하얀 솜뭉치를 갈색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듯 자연스럽지 못한 것 같으면서도 실물임을 거부할 수 없다. 목화를 보고 자라지 않았다면 얼마나 신기해했을까.


 눈송이들을 바라보고 감탄을 자아내고 노란 모과가 주렁주렁 열린 나무에 놀란다. 이렇게 말갛게 물이 든 모과는 여러 해 만이다. 버들 마편초와 에케네시아가 마지막 꽃을 피워내느라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애처롭다. 


 그곳에 다녀온 사람이 커피 맛이 별로라고 했다면서 어떻게 할 것인지 잠깐 고민을 했더랬다. 우리가 그렇게 커피 맛을 따지는 사람들이 아니니 목화로 만족해도 되지 않겠느냐며 왔다. 바닐라 라테 따뜻하게 두 잔을 주문한다. 비켜있는 공간으로 안내를 받았다. 그곳엔 큰 그림들이 여러 점 있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나는 커피를 주문받으신 분에게 혹시 화가세요? 했더니 너무 담담하게 그렇단다. 나중 팸플릿 책자를 보니 서울과 지방에서 일곱 번이나 개인전을 연 분이었다. 갑자기 커피가 맛있어진다. 화가의 손으로 직접 만든 커피 한잔이 소중하다. 진짜로 커피는 맛이 좋았다. 나중 온 그이는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괜찮다고. 우리에게 염려를 나타내었던 분은 취향이 달랐던 것으로.


 그림이 놓여있는 방에 앉아 창문 너머 목화송이와 늦가을의 서걱거리는 것들의 흔들림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앉아 꽃 이야기를 나눈다. 같이 간 그이는 오늘이 생일이라고 커피는 자기가 사야 된다고 했다. 자녀들이 아직까지 아무 말이 없어 서운하다고. 딱 내 마음이 언제 거기로 옮겨 갔는지. 자식들에게 우리는 늘 을임을 되새기는 시간이 일 년에 몇 번 주어진다. 아이들 성격대로 축하하는 방식이 다르니 기다려보자고 할 뿐 말을 더 보태지 않았다.


  아들 병원에 다녀오느라 늦은 이는 감탄에 감탄을 자아낸다. 기분 좋게 약간 높은 톤의 생 그런 목소리가 톡톡 튄다. 한라 봉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를 보며 어떻게 그렇게 풍성하게 키웠는지 묻고 또 묻는다. 제주도에서 묘목을 가져와 3년여 키웠다는데 열매가 많이 달려 가지들이 휘어진다. 원예를 공부하지만 한 수 배워야 됨을 아는 시간이다. 이른 점심처럼 와플로 끼니를 해결하고 월아 산에 있는 강의실로 움직였다.

 

  밤늦게 목화와 모과 사진을 가족 톡 방에 올린다. 셋째가 “정답 목화, 모과” 난 그냥 사진 보라고 올린 건데 뭐야. 며칠 전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구르기에 사진을 찍었다. 나뭇잎이 순간이동을 하는지 같은 장소인데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어 다른 점을 찾아보라고 사진 두 장을 나란히 올렸었다. 아무 말이 없더니 둘째가 빨간색으로 다른 곳을 두 군데 표시해 보내왔다. 딩동댕! 하고 상품 쏜다 했더니 둘째가 뭐예요 한다. 그날 헌혈하고  받은 버거킹 교환권 사진을 찍어 보냈다. “허걱스” “왜” 기쁨의 감탄사란다. 셋째가 좋겠네 했다. 둘째가 이모티콘으로 약 올리면서 부럽지?ㅎㅎ 했더랬다.


 아마도 그것이 생각나서 정답이라며 이름 맞추기를 했나 보다. 상품 할 만한 것이 있나 찾아본다. 없다. 남편에게 상품이 없는데 어쩌지요. 했더니 고새를 못 참고 ‘아깝게도 상품이 없다’ 하고 보낸 것이다. 가만 생각하니 첫째에게서 신세계 상품권이 와 있다. 그거 줄까 했더니 남편 알아서 하란다. 아들에게 주었던 것과 금액 차이가 나서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되물었다. “상품 쏜다” “뭐~” “생각 중~뭐 받고 싶나” “나 12월 16일 집에 가니 과메기 사줘” “당근이지”로 해결되었다.

 

  나중 아들과 통화하면서 그 얘기를 했더니 바로 ‘안 되죠!’한다. 상품권을 준다고 했으면 어쩔 뻔했는지. 이렇게 목화와 모과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둘째는 집에 오는데 시간이 없어 '9월의 봄'에 들르지 못하고 셋째랑은 카페에 가기로 하면서 목화 이야기는 진행형이 된다.   

   

*너무 오래 쉬었습니다~부족한 대로 쉬엄쉬엄 글쓰기 다시 시작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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