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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Jul 16. 2022

밥이 말갛다

    아침에 일어날 수가 없다. 자는 남편에게 밥 좀 하라고 깨운다. 웬일로 당당하게 부엌으로 간다. 쌀을 씻는 소리가 요란하다. 시간이 적이 지났는데도 밥솥에 쌀을 안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가본다. 쌀 너무 씻으면 영양가 다 빠져나가는데! 하고 들어온다. 눈치가 있다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말을 하면 잔소리로 듣고 나  안 해! 할까 봐 조심스럽다. 쌀을 계속 씻는다. 더 뭐라기 뭣해서 아무 말 않는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삼십 분은 씻은 것 같은.


 어제 친구와 생선 정식을 먹었다. 삼삼하게 노릇노릇 구워진 생선이 맛깔스러웠다. 양념게장 두 조각이 나왔는데 비린내가 나서 망설이다 먹었다. 여름에는 날것을 조심해야 하는데 눈이 멀었나.

  

 찬바람이 불어오면 꽃게 철이다. 세월이 가면 어렸을 때 엄마가 해준 음식들이 생각이 난다. 그중 하나인 양념게장. 속이 약한 식구들이 안 먹으니 순수하게 나만을 위한 음식이다. 생강과 마늘을 넉넉히 넣어 간장을 폭 끓여내어 식히고 갖은양념을 넣어 버무리면 비린 맛 하나 없이 밥 한 그릇 뚝딱인데.

  

 저녁에 친구랑 통화를 하는데 배가 살살 아파온다. 선풍기 바람에 차가워져 그런가 싶어 수건을 배에 얹는다. 아픔의 수위가 점점 높아진다. 밤이 깊어 약을 사 오기 어려운데. 위청수를 먹고 체했다면 내려갈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막내를 불러 등 두드리기를 시킨다. 소용이 없다. 아무래도 식중독인 것 같아 매실 원액을 마신다. 거기에 타이레놀 두 알을 삼키고 괜찮기를 바라며 잠이 든다.


  새소리에 깨어나 나 바라기만 하는 꽃들도 보는 둥 마는 둥 들어와 다시 잠이 들었다. 남편도 변하는가. 전에는 내가 아무리 아파도  무슨 억하심정인지 밥을 하지 않았었다. 몸을 겨우 일으켜 끼니를 해결하곤 했는데 나이가 드니 좋은 점도 있다.


 하염없이 쌀을 씻고 있는 남편에게 달려들어 ‘무슨 쌀을 그리 오래 씻느냐고’ 내가 하겠다며 그릇을 뺏고 싶은 충동이 머리끝까지 올라오는데 꾹꾹 누른다. 한참 만에 쌀을 밥솥에 붓는 다. 밥솥의 무엇을 누르면 되느냐고 묻기에 압력 취사를 누르라고 가르쳐준다.


 밥이 말랑말랑 깨끗하다. 아니 말갛다. 나는 약간 되직하면서 씹는 맛이 살아있는 갓 한 밥을 좋아하는데. 남편은 제풀에 찔리는지 물을 너무 많이 부은 것 같다고 한다. 부드러워서 먹기 좋다며 고마워함으로 먹는다. 쌀을 왜 그리 오래 씻었느냐고 묻자 거품이 계속 생겨서 그릇에 물비누가 묻었었나 싶어 씻고 또 씻었다는 것이다.

 

 수도꼭지를 틀어보니 수압이 세게 나오는 곳에 맞추어져 있다. 물이 떨어지는 힘에 의해서 공기방울이 계속 생길 수밖에. 그것이 비누거품인 줄 알고 애먼 쌀만 말갛게.

 남편에게 밥을 해 주어 고맙다며 다음번에는 세탁기를 돌려보자고 하자 눈을 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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