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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Jan 03. 2023

       연

   한 달여 지나 들른 ‘9월의 봄’ 정원에는 목화송이들 앞섶이 풀려 있다. 깃털처럼 가벼운 것들도 중력을 이기지 못하는가 싶어 안타깝다. 작은 나무에 올망졸망 매달려 있다. 내리지 않는 눈을 대신하여 피어난 눈꽃처럼.

 

 고개 숙인 해바라기의 씨방들은 바람을 맞으며 그 찬란했던 자취를 묻고 있다. 허리가 꺾이면서도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해를 따라갔던 만큼 땅을 향하여 아래로 향한다. 지나간 자취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친구와 차를 마시고 정원 한 바퀴. 색으로 이야기하는 말채나무들이 나뭇잎을 떨구고는 더 화려해졌다. 잎이 없는 시간들에 더 두드러지는 모습. 푸름의 시간들이 거친 뒤에도 저렇게 자기만의 색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마당에 바람이 풀어놓아지고 가오리연 한 마리 꼬리를 살랑거린다. 친구는 연을 보더니 얼마 전 연을 사서 날려보고 싶었다고 한다.

 길을 지나다가 하늘 높이 떠 있는 연을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연 줄을 잡고 있는 분에게 자기도 얼레를 좀 잡아보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단다. 그이도 자기 연이 아니라면서 연 주인은 다른 곳에 띄어놓은 연을 보러 갔다며 얼레를 내주었다고 한다. 팽팽하게 당기는 연을 잡아보면서 친구도 마음을 하늘에 올린 것은 아닐까.

 

 낚시 대를 여럿 놓아 물고기를 잡는 것은 보았지만, 연을 여러 개 띄우고 연이 잘 떠 있는지 이곳저곳 살펴보러 다닌다는 것은 처음 들었다. 얼레도 직접 깎아 만들어 연실이 잘 풀리고 감겼다 고. 연을 날릴 때 얼레가 한몫을 한다는 것은 연을 날려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연을 만들고 날리는 장인인 모양이다. 연을 하늘에 띄우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물고기가 잡히는 것도 아니고 바람을 타는 연은 하늘 물고기처럼은 보이지만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옛날부터 연싸움에서 연이 끊어지면 연을 떠난 보낸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자신의 액을 끊어주어 고맙다 인사했다고 한다. 연이 끊어지기를 바라고 하는 싸움이라니. 하늘높이 연을 띄워 한 해의 나쁜 기운들을 멀리멀리 보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가 느끼기에는 농한기철 그렇게라도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연을 날리는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어른이 아이처럼 아이도 어른처럼 연을 날리는.

   

 어릴 때 가오리연과 방패연을 만들었었다. 낫으로 대나무를 갈라서 살을 바르고 대살에 밥으로 짓이기듯이 풀칠을 하였다. 창호지가 아닌 날짜 지난 달력으로 내 나름의 균형을 맞추었다. 바람따지로 가서 연줄을 잡고  연에 바람을 싣는다. 한 오 미터 떠오르다 빙빙 돌다가 땅에 꽂히기 일쑤였다.

 

 친구가 연을 들어 올렸다. 바람이 불어주니 강아지처럼 가오리가 기다란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바람을 탄다. 연이 순식간에 하늘로 뛰어오른다. 얼레의 줄이 술술 풀려나가기 시작하고. 공중에 떠 오른 연은 헤엄이라도 치듯이 이리저리 여유가 있다. 바람이 주춤거리니 연이 전기 줄 있는 곳에 내려앉으려 한다. 전기 줄에 걸리면 연의 생명은 끝난다. 내가 사정없이 줄을 잡아 다닌다. 땅에 실이 쌓인다. 마의 구간을 웬만큼 벗어나자 연을 오른손으로 톡톡 잡아챈다. 고비의 연이 되자 바라만 보 언제 그랬냐는 듯 줄을 채면서 연이  오르도록 애쓴다. 다시 연이 하늘 깊숙이 작아진다. 풀렸던 줄이 순식간에 달려 나가 버렸다.


 문방구에서 파는 연이지만, 바람을 타는 한 마리의 새가 되었다. 가는 줄과 바람을 의지하여 하늘을 누비는 연과 같이,  해 하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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