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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Dec 31. 2022

빨간 재킷

    이 십여 년 전 빨간 재킷을 선물 받았다. 새 옷은 늘 마음을 흥분시킨다. 색도 색이지만 옷이 새초롬하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마음은 자주 입을 것 같았다. 맵시도 있어 보이지만 옷을 사주신 분을 생각하면 잔잔한 고마움이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아이들 어렸을 때 서울 나들이를 가 서울대공원을 돌아보고 케이블카를 탔었다. 그것에 대하여 아이들의 소감을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기억이나 하고 있는지. 시간이 지나면 언제 거기 갔었느냐는 듯이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아이가 없으신 그분은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였다.


  얼마 전 큰딸과 통화를 하면서 나는 늘 너희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뭐가 미안하느냐고. 자기는 어렸을 때 많은 것을 해본 것 같다면서. 차 박도 두어 번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하였다. 그 어쩔 수 없이 차에서 잤던 기억은 나에게는 아픔이었는데 아이 입장에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형편은 어렵고 아이들은 작아서 승합차에서 하룻밤 자도 되겠다는 생각에, 해수욕장에 가 차 안에서 잔 것을 차박이라 이름 붙여주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그럴 줄 알았으면 그 옹색한 차박이라도 자주 할 것을. 차에서 자고 난 다음날 온통 모래벌판이 펼쳐진 바닷가에서 조개를 주어 삶아 먹은 것도 같고.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맞춰야겠다. 딸이 자기는 어렸을 때에 즐거웠다는 한마디에 어깨가 펴지는 것 같다. ‘그래 그때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긴 했었지. 너무 애석해하지 말자’하고 움츠러드는 마음을 다 잡아본다.

 

  아이들과 비토 섬에 몇 번 간 적이 있다. 거북이와 토끼의 전설이 내려오는. 바닷길을 걸어 산으로 이어지는 모세의 길이 열리는 곳 같은 지형을 가지고 있었다. 구경을 하고 회를 먹었었는데 횟집 사장님이 가격에 비하여 넉넉히 주신 것 같았다. 아이들은 여럿인데 작게 주문해서였을까. 안 되어 보여서 그랬나. 고마운 분들로 기억된다. 비토 섬 하면 아이들과의 시간이 묻어나는 곳이다. 이번 설에 아이들이 모이면 그 섬에  다시 가보고 싶다. 아직도 그 횟집은 있는지. 다 큰 아이들에게 회 좀 사라고 하면 될라나.


  가만 돌아보면 숨어있는 산타들이 항상 주위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꼭 필요할 때 출동하는. 그래서 슈퍼맨 영화들이 나오는 것은 아닌가 싶다. 해가 다시 돌아온다. 마음을 나눌 때에 우리는 서로에게 선물이 된다.

  

   빨간 재킷을 몇 번 입고서 세탁소에 맡겼다. 찾을 때에 세탁소 사장님이 좋은 옷이니 아껴 입으라고 하던. 옷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평생 옷을 만지는 분이 그렇게 말해주니 더 애착이 갔다. 그렇더라도 빨강이어서 자주 입지는 못하였다. 멋을 모르니 무채색 옷을 주로 입는 편이라서.


  어느 해부터인가 성탄절 날 입는 단골 옷이 되었다. 산타 복처럼 빨간 재킷을 입고 나서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십여 년이 지났지만 옷은 아직 그대로 새초롬하다. 유행도 타지 않거니와 입는 사람도 유행을 따지지 않는 무대보이니 궁합이 잘 맞다.

 

  사람들은 산타가 없다고 말한다. 꼭 산타가 산타 복을 입고, 선물자루를 메고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은유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단지 국어시험문제를 맞추기 위하여 은유법을 배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은 은유일 때가 더 많다. 은유가 있어야 시가 되고 삶은 빛난다. 은유를 느끼는데 예민해지고 싶다. 산타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나기에.


  마음의 문을 열면 곳곳에 산타들이 살고 있다. 올해도 나는 산타들로부터 선물을 많이 받았다. 사랑의 빚 무게때문에 몸무게를 달면 실재보다 훨씬 더 나갈 것도 같은. 즐거움의 빚이다. 사랑의 빚은 지라고 하신 말씀에 기대어 사랑의 빚을 나누기도, 지기도, 하는 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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