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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Jan 07. 2023

   발자국

   엄마! 어제 고추장을 처음으로 담았습니다. 두 어머니들이 주시던 것을 제비새끼처럼 따박따박 받아먹다 여의치 않으면 마트에서 사 먹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새 둥지를 떠나고 장류가 많이 들지도 않을 것인데 웬 고추장이냐고요? 철이 늦게 드나 봅니다. 내 손으로 해서 먹고 싶더라고요. 지금부터라도 주부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아보고 싶어진 것 일지도요.


  엊그제 요양원에서 만난 엄마는 세 달을 채워가고 있었습니다. 얼른 찾아뵙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지요. 마지막학년 마지막학기 기말시험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숙제는 왜 그리 많은지요. 다 늦게 무슨 욕심에 공부하느냐던 엄마! 어쩌면 우리 인생은 배움에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일 년 다지기를 하다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두 시간 반을 달려 엄마한테 가는 길이 가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을 갔다면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요. 엄마가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면 어째야 하나 별별 생각이, 마음에 돌덩이 하나 넣어둔 것 같아 그랬을 지도요. 사랑보다는 자식이라는 의무감으로 가느라 그런 것은 아닌지 나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작으면 바꾸려고 가격표도 안 뗀 옷가지들을 사무실에 등록했습니다. 원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엄마 안 맞으면 다른 분들 나누어 입혀도 되느냐고요. 그러시라고 했습니다. 그곳은 우리가 생각하는 곳과는 거리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공동생활이니까요.

 

  거동이 안 되어 휠체어를 의지하여 나온 엄마! 허리가 많이 좋아졌다고 웃는 얼굴을 보니 적응을 잘하고 계신 것 같아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곳에 있는 선생님들이 잘해 주신다 해서 감사했습니다. 누군가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시간이 되면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이 흐려지기도 하고 환해질 것도 같습니다.


 누가 제일보고 싶으냐는 물음에 엄마는 아들 손주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습니다. 아직 어리고 가까이서 정이 들었기 때문이겠지요. 동생가족이 모두 감기가 들어 얼른 들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엄마의 영상을 찍었습니다. 더 건강하신 모습을 담아두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움이었습니다. 어느 글에 보니 사진은 많은데 부모님 목소리가 그리울 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듣고 싶은 목소리를 어디 가서 들어야 할지 몰라 안타깝다고요. 그것이 생각나서 엄마 목소리를 녹음습니다.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요양원이 낯설었습니다. 치매 어르신들 때문이라지요. 어렸을 때 읍내로 학교 다닐 때 ‘희망원’이라는 곳을 지나야 했었습니다. 그곳에도 철조망이 쳐져 있었죠. 거기에 매달린 사람들이 집에 연락을 해 달라고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건네려고 애를 썼습니다. 지금은 조현병이라 불리지만 그때는 정신이상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시설이었지요. 부모들이 더 감당할 수 없어 그곳에 데려다 놓은 것인데, 그들은 집이 그리워 대답 없는 메아리를 기다리며 살고 있었지요.

 

  이제는 자식이 부모를 떼어놓고 있습니다. 엄마도 집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사위는 날이라도 따뜻해지면 며칠이라도 집에 모셔서 지내시게 하자고 하더군요. 쉽지 않겠지만 우리에게는 봄이 있습니다. 기약해보기로 해요. 엄마도 그동안 몸이 좋아지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나이가 들면 몸 하나 거천하기 어려운 시간이 오나 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누군가를 의지하여 살아내야 하는 여정이 인생에게 주어진 슬픔입니다.

 

  써놓은 찹쌀 죽에 쌀엿과 메주가루, 매실 액, 골마지 끼지 말라고 소주를 섞어 오래도록 저었습니다. 음식은 정성이라 했으니까요. 소금을 넣지 않았을 때의 맛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는지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하신 말씀도 생각났어요. 나는 얼마나 소금 노릇을 하며 살고 있는지 톺아 보았습니다. 고춧가루 세 근에 맞추어 눈대중으로 간을 했습니다. 과학적이지 않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요. 엄마가 하던 모습이 나에게도 배어 있으니까요. 삼십 년 밥을 해 먹었다면 눈대중이 저울과 같아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유튜브 선생님을 두 분 모셨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과 젊으신 분 것을 참고하였지요.

 

  막 결혼 하였을 때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요리를 어떻게 하느냐 묻고는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손전화기를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조금씩 단절을 겪는 것이 아닐까요. 편리함을 따라가다 보면 정이라는 것이 점점 쌓이지 않고 퇴색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일 년 정도 먹을 고추장이 만들어졌습니다. 발효를 시켜야 하는데 바로 먹어도 맛이 더라고요. 속으로 감탄했습니다. 누가 만들었는데 이렇게 잘 만들었느냐고요. 자랑을 했더니 남편이 자기가 먹어보아야 안다기에 저녁상에 조금 내놓았습니다. 아들도 남편도 맛있다고 했습니다. 나에게도 엄마의 손맛이 이어진 것이겠지요.


  엄마가 요양원에 들어가시자 삶이 더 애틋해져서 엄마가 했던 것들을 한 가지 한 가지 해보고 싶어 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 발자국 속에 내 발자국을 포개고 싶은 것 인지도요.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무의식과 의식을 오가고 있습니다. 삶의 질적인 부분에 더 힘써야겠습니다. 엄마, 또 뵈러 갈 때까지 마음 편안히 지내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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