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진 Jan 28. 2023

그 어른

   그 어른은 물 한 병과 음료수를 들고 입구에 서 있었다. 무슨 정신에 그러고 계셨는지 지금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신호가 열리자 좌우를 살피지 않고 건너던 남편이 덤프트럭에 받쳐 운명하셨던. 남편을 보내는 장례식장에서 멍한 표정으로 실감이 나지 않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모습으로. 큰며느리 언니 내외가 멀리서 왔다고  신경이 쓰였을까. 음료를 챙겨 들고 기다리고 있었던 듯하다. 인사를 드리고 나오려는데 손에 있던 것을 건네셨다. 장례식장이기도 하고 이미 동생이 물을 챙겨주어 가방에 넣은 뒤라서 거부했다.

 그날따라 가방을 작은 것을 들었다. 검은 정장을 입었으니 거기에 맞는 것을 든다고. 여느 때 가지고 다니던 포대자루 갔던 천 가방은 내려놓고 옷과 비스무리 구색을 맞춘다고 챙겨든 가방. 덥석 받아 손에 들기가 뭣하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인데.


 손이 얼마나 민망했을까.

 

  본디 누가 무엇을 준다고 하면 거절을 못하는 성미다. 남편은 늘 그것이 불만이지만. 그래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가난으로 인하여 굳어진 버릇이든지, 나의 입장일 때를 바꿔놓고 생각함 때문인지 모르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받은 것은 잘 쓰려고 노력하고  안 될 때에는 다른 들이 사용하도록 하지만.


 구정을 네댓새 앞두고 막내여동생의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는다. 아직 세상을 버릴 연세는 아니신데. 지병이 있으셨지만 허망하게 떠나시면 안 되는데. 안타까운 마음을 누를 수 없었다. 병원에 입원하신 다음날 걱정하는 자식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시어 이제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하시고, 설에 보자고 하셨단다. 코로나 후유증인지 폐렴이었다는. 어안이 벙벙하다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음료를 챙겨 들고 계시던 분이 영정 사진 안에서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어머니가 떠나셨지만 자식들이 우애 있게 지내기를 기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하나의 마음을 모았다. 그분이 바라는 가장 큰 덕목일 것 같아서.

 

  그 어른과 나야 접점이 별로 없다. 여동생 시어머니였기에 간간이 소식만 한 번씩 들을 뿐이었다. 대가 찬 며느리 비위 맞추느라 마음고생은 안 하시는지 한 번씩 생각이 스쳤다. 동생이 들으면 크게 성낼 일이지만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먼저 가신 바깥사돈은 신문사 일하시다가 은퇴 후에도 계속 회사에 나가셨다고. 시어머니를 꼼짝 못 하게 한다는 소리를 바람결에 들었었다. 엄격한 남편을 여의고 활개치고 사시려나 싶었더니 일 년 조금 지나 따라가셨다. 남편 그늘이 더 좋으셨던 것인지.


  그렇게나 빨리 가실 줄 알았으면 장례식장에서 주시는 것을 받았어야 했다. 손에 뭐가 들려있으면 좀 어떤가. 다른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하든 말든 그 어른의 마음을 감사함으로 받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일 년이 지나 도돌이표처럼 마음을 때린다. 상하는 것도 아니니 식탁에 가져다 놓으면 식구 중 누구라도 마실 것을. 차리지 않던 체면이라도 차렸었는지, 사람들 눈치가 보였나. 기쁨으로 받았더라면 마음이 더 안온했을까.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주는 것도 용기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솔길에서 지나가던 아이가 솔잎 몇 가락 건네도 고맙다고 받으면서 그때는 왜 그랬는지. 나를 혼내고 싶어 진다. 다른 이의 입장에서 한 눈금 더 생각하고 받아주는 시간들을 살아가노라면 그 영정 속의 사돈어른이 웃어 줄런지도.


작가의 이전글 고양이에게 밀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