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구슬

엄마의 인생과 겹쳐 보인다

by 민진

달에 한 번, 자식이라고 시늉하며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를 보러 다닌다. 어머니는 움직이지를 못하여 붙박이가 된 지 여러 해다. 그것이 엄마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아 육십 줄에 앉은 나도 뵈올 때마다 명치끝이 아려온다.


이번에 갔더니 다른 때와 다르게 엄마의 얼굴에 노기가 품어져 나온다. 무슨 일 있느냐는 물음에 말을 아낀다. 만나는 공간이 열려있어서인가. 부대낀 흔적이 역력하다. 지난달 보이지 않던 볼의 상처가 검버섯에 가려져 있지만 또렷이 드러난다. 영양 상태나 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반증인 것 같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마음을 달래 드린 뒤, 무슨 속상한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점심을 건너뛴다고 하였다. 그 순간에는 별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움직임이 없으니 한 끼 안 드시는 것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끼니를 간식으로 대체하는 것 같으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었다. 돌아오면서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골똘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을 지낸 엄마는 여간 서운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하루 종일 침대에서 텔레비전에 눈 박고 지내는데, 먹는 즐거움을 빼면 어떤 것에서 하루를 버티는 힘을 얻을까 싶기도 하다.


엄마를 만나러 가기 전 요양원에 미리 전화를 해 둔다. 엄마를 바로 볼 수 있게 준비를 해 주라는 부탁이다. 몇 시간을 달려가니 바로 면회를 하여야 더 오래도록 얼굴을 볼 수 있기에.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지 처음의 마음이 흐지부지 해진 것 같다. 한참을 기다려야 엄마 얼굴을 볼 수 있다.


얼마 전 요양원 내부에 지각변동이 있었다. 부산에 살던 젊은 딸을 원장으로 내세웠다. 어린 딸을 어린이 집에 보내는 젊은 친구들이니 더 잘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무참히 깨진다. 서류상 원장이야 한 사람이지만 세 사람이 월급을 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여러 생각으로 골몰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에는 보이지 않던 멀구슬나무들이 곳곳마다 보였다. 꽃 지고 잎 져 노르스름한 열매만 바람맞고 있다. 여러 해 차를 타고 지나다니는데 멀구슬나무가 그렇게 많은 줄을 처음으로 알았다. 새들이 맨 나중 먹을거리로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별맛이 없다는 뜻이다. 바람에 열매가 흔들린다. 빛깔도 선명하지 않은데 눈에 자꾸 들어온다. 나무 한 그루의 매무새가 생각보다 멋져서 의외였다. 잎 저버린 멀구슬나무가 저렇게 존재감이 있는 나무였던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봄 어느 날 새잎이 나고 수수꽃다리 비슷하게 꽃이 피어날 때, 열매는 그제야 땅으로 떨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간다. 멀구슬 열매가 찬바람을 맞으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안쓰럽다. 엄마의 처연한 모습을 보고 난 후여서인지 엄마의 인생과 겹쳐 보인다. 내어 줄 것 다 내어주고 바람맞는 세월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아 덧없다.


엄마에게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생의 마지막 시간이 더 존중받고 위안받으며 지내시기를 소망해 본다. 와상이지만 분명 안온하게 계실 곳이 있을 것이다. 모두 치매인데 혼자서 멀쩡하기에 오히려 소외를 받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올케에게 내 마음을 분명하게 전하였다. 엄마가 안연히 쉴 수 있는 곳으로 옮겨 가실 수 있기를 바래본다. 막내딸이 인천으로 모셔간다 할 때, 아들 가까이 있겠다고 거절을 하여 막내딸과 아직 서운한 사이로 있다. 나이 들어 타지로 떠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 분명하다. 엄마는 아들 가까이 어린 손주들이 보고 싶어 그곳에 머무르기를 원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내 가까이로 오시는 것은 어떨지 다음번에 엄마의 의중을 물어보아야겠다.


*위 사진은 소요민지 님 블로그에서 가져왔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