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심는 것은

인생자체가 씨를 심는 여정

by 민진

삼 년 전에 수목원에서 크리스마스로즈 씨앗을 받아다 심었다. 여러 개의 싹이 자랐다. 그다음 해에 꽃이 필까 했는데 여지없이 기대가 무너졌다. 그 무렵 꽃 친구는 제주도까지 가서 크리스마스로즈 모종을 사 왔다고 자랑을 했다. 말하지 않아도 이상한 경쟁구도가 그어진다.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활짝 핀 로즈를 사는 것이 훨씬 빠르다. 초화류인데 가격이 제법이다. 제법이라는 것은 삼만 원 이상일 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 정도로 뭘 그러냐고 할지도 모른다. 나무가 아닌 풀꽃을 그 정도 주고 산다는 것이니 이해를 해야 한다.


작년에 산 흰색 크리스마스로즈가 일찍 꽃을 보여주어 참 다행이다. 다시 피어주기가 쉽지 않은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어려운 녀석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겨우내 흰색으로 피었다가 연초록으로 바뀌어간다. 거의 스무 개 정도의 큰 꽃이 지지도 않는다.


꽃씨로 키운 크리스마스로즈가 삼 년이 되어 드디어 피어났다. 연자주 빛이다. 고개를 수그리고 수줍은 듯 피어있는 것이 신비롭다. 겹꽃보다 홑겹을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홑겹이다.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지만 이제는 조금 참을 줄도 안다. 프로필 사진에만 살짝 올렸다. 알아본 친구들이 좋아요를 해 주는데 기쁜 것은 꽃집을 하는 친구가 눌러 준 것에 의미를 둔다. 맨날 꽃 하고만 살다 보니 웬만한 꽃을 보아서는 마음이 동하지 않겠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모종을 사 와 꽃을 피운 친구는 화분 가득가득 핀 로즈 꽃 사진을 일주일에 한 번씩 보내온다. 보기만 해도 껌뻑 넘어갈 정도로 이쁘다. 매번 축하를 해준다. 그렇더라도 씨를 심어 싹을 틔워 꽃까지 피워낸 나에게 위안과 점수를 더 준다. 남의 것이 아무리 좋아 보인다 할지라도 나에게 있는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함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씨앗을 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기다린다. 이제나 저제나 싹이 보이기를 바라며 때마다 들여다보고 언제 얼굴 보여 주느냐며 눈치를 준다. 그러다 그 가녀린 것이 흙을 뚫고 고개를 내밀면 갑자기 마음이 환해진다.


그때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들여다본다. 몇 개 나오는지 개수를 세고 해바라기를 시켜준다. 꽃을 보기까지 얼마의 수고일지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굳이 그런 수고를 해야 하는가 어떤 때는 한심하다. 그냥 꽃집에서 예쁜 것 사다 보는 것이 가장 쉽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수고를 값으로 사면 제일 안전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쉬운 길보다는 어려운 길을 택하고 도전하는 것인지. 그것이 우리 안에 감춰진 비밀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냥 돈 주고 산 것은 예쁘다 하면서 보고, 처음부터 같이 한 세월이 묻어 있는 것에게는 마음이 좀 다르다. 뭐라고 해야 하나. 애틋하다는 표현이 맞을까. 나의 정성과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면서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 넌 뭘 해도 잘할 수 있어!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우게 된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 다른 것에서도 용기를 낼 수 있는 것 같다. 에이, 식물 싹 틔워 꽃 보았다고 그럴 수 있나 하는 분은 한번 도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삼 년의 시간을 견디어 피는 꽃을 보면 내가 들인 시간과 모든 정성들이 꽃에 스며들어 피어난 것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생자체가 씨를 심는 여정이 아니겠는가? 내가 심은 씨가 열매를 맺어 내가 따거나, 누군가 거둘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고운 씨앗들을 부지런히 심어야 한다.


새봄을 맞이하면서 꽃씨를 주문했다. 도전했다가 실패한 테디베어 해바라기와 초콜릿체리 해바라기, 모네의 정원에도 피어있는 델피니움. 가을 산에 피는 마타리 씨를. 아직은 씨로 봉지 안에 들어있다. 알맞은 시간에 심어야겠다. 꽃이 피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두고 보아야 한다. 일 년생은 올해 꽃을 볼 수 있고 다년생 마타리는 언제 노랗게 앙증맞은 꽃무리를 마주할 수 있을지.

올해는 꽃 소식을 더 자주 전하고 싶은 마음이 봄바람을 타고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