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읽지는 못한다. 그냥 조금씩이라도 꾸준하게 보려는 노력이 가상하다. 같은 책을 반복해서 보는 것은 무리다. 숲을 곁에서 마주 보는 식의 읽기를 하고 있다고 해야 할 듯. 나무들이 풍겨내는 향기를 옅게 맡는다. 독서 감상문 쓰기도 하지 않는다. 제목과 날짜와 지은이 정도 기록을 해둔다. 나만을 위한 마무리 달, 마무리 날에 ‘몇 권을 읽었을까’ 위로하기 위함이다.
코로나가 발병하자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다. 백신이 생기면 독감처럼 몸안에 병원균을 집어넣을까. 지킴이로 하여금 이겨본 싸움을 싸우게 하고 자신감을 얻어서 파수꾼의 사명을 다하게 하려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야기하고, 집에 있는 시간을 늘리려면 뭔가 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하다. 질병으로 인하여 긴 이별을 할 수도 있고 짧은 헤어짐을 경험하기도 한다. 정신적인 깊은 지지가 있어야만 이겨내기가 수월할 텐데. 관공서들은 열 감지를 하고 손 소독제를 바르면서도 일을 한다. 도서관은 이 때다 싶을 만큼 고민이 없이 문을 닫아야만 했는지. 앞으로 어떤 변이의 전염병들이 우리에게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가득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찰나 앞에 어쩔 수 없이 서게 된다. 육체적인 건강만을 생각하면 훨씬 고통스러운 싸움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의지의 굳건함만이 어둡고 아픈 공포로부터 조금이나마 덜 외롭게 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이 집에 있는 책을 더듬게 된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롭다. 오솔길이 나있고 그 곁에 연분홍 진달래들이 수줍다. 이제 막 움이 돋아나는 파리한 싸리나무, 곁에 유난히 잎이 붉게 물드는 옻나무도 성큼 서 있다. 양지꽃이 다보록하다. 산수유도 작은 꽃 알갱이 하나하나가 금싸라기로 뭉친다. 그 노란 꽃이 가을이 오면, 가지마다 빨간 귀걸이를 주렁주렁 내밀어 줄 텐데. 아름드리나무를 안아보고 못난 나무 선산을 지킨다는 소나무의 경치도 감상해본다.
아이들이 태어나자 교육서에 목말라했다. 처음 해보는 일들이라서 모르는 것을 찾으려 애썼다. 손을 떠나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독서모임을 나갔다. 교양서적으로 교양인이 되어보려 두루치기를 했던 듯하다. 노력에 견주어봐도 깊이가 있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감정이 다치면 되갚아 주고자 하는 얕은 생각에 묻히기도 하는 걸 보면. 아이들만 그러는 게 아니다. 몸집이 불고 지위와 명예라는 옷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고도의 전략으로 갚아나가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 아닐까. 이성과 감정의 치열한 싸움에서 늘 감정이 이기는 것을 본다. 아직 갈길이 멀다. 사람이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닌 천성으로 살아지는 것이지 않을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야금야금 문장 하나하나를 만지듯 훑는다. 숨어있는 사금파리 하나까지도 내 눈빛과 만나 반짝 번쩍이기를 바란다. 햇빛을 받으면 금모래가 되는 강가를 걷기도 한다. 수양버들이 가지를 드리우며 한창 연둣빛의 꽃을 피워 물었다. 앉은뱅이 꽃들이 봄 합주를 시작하여 대지를 흔들어 놓고 있는 모습이 귀에 쟁쟁하다.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작가들의 고뇌와 쓰라림을 내 것으로 받으며 아파해본다. 어렵사리 피어난 사랑이 눈물겨워, 사랑하면서 살자고 다짐도 한다. 강요하지 않으면서 먼 산을 바라보듯 그 안에 담아놓은 빛깔들에 은은히 물들어간다. 나의 글쓰기 하고는 너무도 다른, 감춰 놓은 보석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면 잔잔한 감동이 뭉클거린다. 한 문장 한 소절이 눈부심이며 초록의 향연이다. 삶의 진한 향기가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