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눈

그것들의 끝 닿는 곳

by 민진

띵동! 「해외 입국자 확진자 1명 추가 발생, 자가 격리 중 검사 실시, 마산의료원 이송, 가족 이외 접촉자 없음.」 문자가 계속해서 울린다. 서부경남 일대와 중앙 대책본부에서도 온다. 작은 곳이 이러한데 대도시의 시민들은 하루에 몇 통의 경보를 들어야 할까. 지역의 경계를 넘으면 그곳의 문자를 받는다. 한 몸과 같이 된 손전화기로 하여 꼼짝 못 하게 묶인 듯하다. 어떤 영화에서는 휴대폰으로 전송한 전파가 사람들을 분노케 해서 싸우게 하고 멸망의 길로 이끌려고 하던데. 뉴스의 눈을 통해서 세계의 코로나 확산 추이가 바로바로 확인이 된다. 바이러스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동침으로 세계는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에 놓여있다.

시시티브이가 곳곳에 설치되어 하루 동안에만 몇 번을 찍히는지 알 수가 없을 때 아연했다. 시간이 지나자 무덤덤해졌다. 차량에 블랙박스를 너나 나나 설치해서 피해의 정도를 가름한다. 경기에서 아리송한 상황은 비디오 판정을 한다. 심판의 눈보다는 기계의 눈을 더 믿는다. 집집마다 인터넷의 설치가 원격 조정기는 아니기를. 개인정보를 지켜준다는 말은 믿기지 않는다.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는 느낌이다. 누구로부터의 살핌인가. 무엇에 대한 확인인가. 인공위성 눈으로는 저 깊은 지하까지 꿰뚫어 본다. 어떤 것을 원하고 위한 것일까. 세상은 어디라도 숨을 곳이 없다. 누군가가 말했다는 보이지 않는 감시자의 존재를 항상 느끼며 살아가야 할까. 그 옛날의 미지의 세계의 실현인가.


브런치를 통해서 각 나라의 처해진 상황들을 감성의 어우러짐으로 받아본다. 또 하나의 파견된 눈 같다는 생각은 혼자의 것일 수도. 나 또한 그 역할을 분배받았나. 흩어진 눈들이 각기 다른 프리즘을 통하여 여러 가지 색을 입히는 작업들을 하는 것인지. 누군가 나를 꿰뚫어 보고 있다는 것이 갑자기 두렵다. 생각마저도 지시된 대로 하라고 강요받는 느낌. 하나님마저도 자유의지라는 것을 주고, 따져보고 믿으라고 하는데.


그이는 개인정보를 유출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했다. 그러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좋게 넘어가려 해도 소용없었다. 눈으로 직접 보았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맞고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경쟁자로서 밀어내고자, 자격지심에서 와지는 시기와 질투심이 빚어낸 행동이다. 덮어 씌우고자 하는 것을 사실로 믿어버리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한결같을 수가 있을까. 시간싸움의 지리멸렬함과 스트레스의 고통은 암으로까지 번지고. 삼 개월 전에 열린 법정 심리. 고삼 수험생의 엄마로서 그 시간에 정보를 유출할 수 없다고 변론 아닌 사실을 말하고. 다시 열린 재판에서 판사가 말을 기억해낸다. 차를 타고 다닙니까. 버스를 타고 다닙니다. 그래요. 교통카드를 사용했다면 증거를 찾아보세요. 사건에 매여서 그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는데. 사회적 명분이 있는 몇 사람이 이익을 따라 가해자의 편을 들고 나온다.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교통카드의 내역을 조사해 본다. 현금을 주고 버스를 탔으면 어쩌나 했는데. 당일 아침 움직임이 몇 시 몇 분 몇 초까지 기록되어 툭 떠오른다. 정보 유출을 했다는 그 시간에 그이는 버스단말기의 울림음을 듣고 있었다. 알리바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판가름한다. 오월에 재판이 열리면 그들은 또 뭐라고 할까. 보지도 않았으면서 맞다 고 맞장구 쳐주던 사람들의 위증은.


감기어져 있던 또 다른 눈이다. 잠자고 있다가 어느 때라도 소환하면 번쩍 뜨는 진실인 것처럼. 보호자의 눈이다. 우리는 수많은 눈과 눈을 마주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정하게 웃는 눈이라면 마음 깊은 곳까지 헤살 거리는 온기로 채워진다. 감시하는 눈보다는 도와주고 아파해주고 감싸 주며 어루만질 수 있다면 얼마나 그윽할까. 날개 짓 같은 작은 몸짓들이 나비효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 머무는 곳 어디라도 눈들이 깜박거리고 있다. 그것들의 끝 닿는 곳이 평화를 위한 것이라면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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