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지자 화초들이 물을 많이 먹는다. 아침에 주고 해넘이 때 또 주어도 목말라서 비실거린다. 수국은 물먹는 하마처럼 계속 물을 달라고 보챈다. 조금만 틈을 보이면 이파리를 말리고 애를 태운다. 시들 점을 넘긴 잎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아서 잘라 낼 수밖에 없다. 지난해까지 통 하나에 물을 받아두고 주었는데, 몸집을 부풀린 나무들 때문에 물받이를 더 준비했다. 저녁에 받은 물은 아침에 주고, 비운 곳에 다시 채워진 물은 햇빛 비치어 맑아지면 저녁에 준다. 수돗물을 미리 받아두면 염소가 날아간다. 순하여진 물을 꽃들도 좋아한다.
저녁 먹고 나서 현관문을 열어두고 있으려니 할짝할짝 소리가 난다. 수돗물을 틀어두고 잠그는 것을 잘 까먹어서 물소리가 나면 순간 긴장한다. 다행히 아니다. 무슨 소리일까. 방충망에 가려져서 물통이 보이지 않는다. 고양이가 물을 마시는구나! 생각이 들자 살폈더니 어느새 눈치채고 가버린다.
동네에 길 냥이들이 많다. 지나가도 뭐 갈길 가라는 식이다. 저와 나의 관계가 대등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시골에서 자랐다. 소가 쟁기질하여 골라준 땅에 모내기를 하며, 소달구지가 짐을 싣고 다니는 것도 보았다. 거위가 사납게 집을 지켜서 겁을 먹고, 동네 개들은 무리 지어 천방지축 안 다닌 곳이 없었다. 닭과 오리들은 누구 소리가 큰지 시합을 했다. 닭과 오리들에게 영양 보충시킨다고 개구리를 잡으러 다녔다. 몸보신을 한 것들은 빨리 자랐다. 엄마는 장날이면 그것들로 돈을 사 오기도 했다. 소죽을 끓이기 위해 아버지와 작두로 여물을 썰 때에 짚을 먹이는 일을 했다. 손 조심하라고 누누이 말했다. 작두가 위에서 내려쳐질 때 싹둑싹둑 잘려나가는 짚을 보면 더럭 겁이 나기도 했다. 다 썬 짚을 큰 가마솥에 푹 삶아 구시에 듬뿍 퍼주면 소가 얼마나 맛있게 먹던지. 그 큰 눈으로 나를 쳐다볼 때는 꼭 뭔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외양간 아궁이에는 아주 커다란 고구마를 집어넣는다. 새벽바람이 찬데도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마당을 가로질러 발자국을 남기며 군고구마를 꺼내와 긴 겨울밤 끝자락을 메웠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살기 시작하면서 동물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새들의 지저귐이 들리지 않으니 정서불안이 오는 것 같았다. 가슴이 뛰고 어찌할지 모르겠던 때. 뭔가가 내게서 빠져나가버린 것 같았다. 지금도 아침에 새소리를 찾아 귀를 기울인다. 막 어둠을 거두어 내는 그 시간에 새들도 아침을 맞는 것 같다. 그 청아한 소리를 듣고서야 마음이 안정이 된다. 어린 시절 새소리를 듣고 자라서인가. 하이디가 할아버지 집을 그리워하여 종탑으로 올라가 알프스 산이 보일까 두리번거리던 것처럼 찾고 찾는다.
가끔씩 느긋하게 길을 가는 고양이를 보며 생각한다. 그래 이 지구라는 별이 사람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지. 식물과 새와 물고기도, 네 발 달린 짐승도 같이 살아가라고 만들어졌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어우러져서 평화롭게 살아가란 창조자의 뜻이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 걸까.
모든 계절에 물을 받아둔다. 겨울에도 꽃들은 조금씩이라도 물을 마신다. 오전 해가 뜬 뒤 대기가 따뜻해지면 준다. 늦으면 뿌리가 얼어버릴 수 있기에. 아마도 고양이는 맨날 와서 물을 먹었나 보다. 현관문이 닫혀 있어서 소리를 듣지 못했을 뿐. 깊은 산속 옹달샘은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찾아가서 먹고, 우리 집 꽃에 줄 물은 고양이가 밤에, 몰래 와서 마시는 옹달샘이었구나. 몇 모금이지만 물을 마셔야만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같다. 그들의 살아가는 방식이나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큰 덩어리로 살펴보면 엇비슷하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이름표를 달아 주어서 경영하고 다스림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을 뿐. 함께 잘 지내라는 뜻이 누리에 가득하다.
글을 쓰는 것도 옹달샘과 같다. 퍼내면 퍼낼수록 새물이 새 생각들이 차 오른다. 흘러가게 두지 말고 마셔야만 한다. 급하면 조롱박에라도 담아두듯 전화기 메모지에 차곡차곡 쌓아두자. 한번 지나간 생각들은 다시는 떠오르지 않고 흘러가 다른 주인을 찾아간다. 자기를 잘 받아줄 사람을. 오늘도 내 옹달샘에는 고양이도 참새도 다람쥐도 찾아오고 꽃들도 서성이기를. 한 모금의 물이 있는 나날로 보내고 싶다.
고양이들은 코로나에 안 걸리는지 마스크도 안 쓰고 다닌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 같다. 느긋하게 걷고 새끼를 거느리고 놀아주고 지켜주고. 거리에 어슬렁거리며 서두는 법이 없다. 먹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저들에게 친절하지도 않다. 그래도 물이라도 먹겠다면 얼마든지 좋다. ‘연중무휴 물 값은 됐네요.’ 언제고 찾아와도 되는,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그 집! 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와서 목을 축일 수 있는 안전한 곳이 한 곳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