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인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스치는 꿈이었나. 충격이 심해서 꼼짝 못 하고 기도만 한다. 남편이 물어다 주는 이야기로 가슴을 쓸어내릴 뿐. 정신을 가다듬고 안전벨트를 푼다. 모자를 쓰고 차문을 열려고 하는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마음까지 떨린다. 다시 주저앉는다. 구급차 소리가 났다가 멀어져 간다. 뒤차에 탔던 친구들이 실려 갔다. 다행히 제 발로 걸어서 응급차에 탔다고. 경찰이 와서 우리 차 앞뒤를 살핀다. 죄인 된 느낌으로 꼼짝 안 하는 내가 한심하다. 남편 혼자서 사람들을 상대하라고 하는 것 같아서.
쾅하는 소리와 함께 승용차가 도로를 가로질러 누웠다. 나한테 오는 충격이 심하지는 않았다. 뒤차의 안부만을 바라고 또 바란다. 명절 때에 고속도로에서 일어나는 몇 중 추돌 장면이 영상처럼 떠오른다. 고속도로에 차량 두 대만이 그 자리에 놓여야 할 것처럼 엎드렸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개념이 없다.
어머니를 보고 오는 길. 해안도로를 따라 바닷길로만 간다. 남도여행이라는 책에서 본 경치들이 나를 손짓해 부른다. 그림같이 떠 있던 배들을 보며 꿈결 같은 순간을 달린다. 내 마음이 내 것이 아닌 양 바다가 가져간다. 도로 공사 중이어서 이어져야 할 바닷길을 놓쳤다.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녹여내느라 막이 오를 대로 오른 마음이 실망한다. 가시처럼 뾰족해진다.
젊었을 때는 직선처럼 속사포를 쏟아냈는데, 지금은 은근이 긁는다. 삼십 년을 살아와서 서로 잘 안다. 속속들이 꿰뚫어 보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겁도 나는 것은 아닐까. 어떤 부분을 건드려야 되는지. 초미세 현미경처럼 촉수의 흔들림까지 잡아낼 수도 있으니까. 속내는 감추어두고 더한 생채기를 낼 준비를 하는지도 모른다. 운전대를 누가 잡았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같이 있음으로 해서 공범이다.
보험회사 직원이 나오고 우리는 집으로 왔다. 집에 가는 것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블랙박스 영상을 보냈다. 그냥 움직여야 되니까 행동한다. 저녁을 먹고, 강의를 듣고, 잠을 자고. 영혼 없는 몸처럼.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싶지만 정신만 들면 가슴이 뛴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모르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경찰서에 가지 않아도 되고 반반 정도 잘못을 한 것 같다고 보험회사에서 임시 처방을 내린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스럽다. 새로 얻은 시간이며, 삶이며, 사람들이다. 생각이 꼬리를 문다. 인생을 수평선 바라보듯 깊이 바라보아야 한다고.
모든 것이 새롭다. 화초를 돌볼 때도 꽃에게 물주라고 고이 보내셨을까. 아이들 목소리 듣는 것이 새삼스레 고맙다. 남편에게 만족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자기가 더 미안하다고. 서로를 불쌍히 여긴다. 부딪힌 차량의 청년들이 다치기라도 했다면 남은 세월을 짐을 진 것처럼 어찌 살아갔을까. 갑자기 달팽이처럼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같다. 희끄무레한 끈적임으로 실선을 남기며 오늘도 길을 간다.
뒤차가 과속을 해서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차가 돌면서 우리 차 뒷부분을 스치고 지나갔다고 한다. 그 차는 폐차할 정도가 되었는데 우리는 둥우리에 고이 보호받은 새처럼 다치지 않았다.
생은 혼자서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다. 같은 공간의 사람들, 자주 만나는 얼굴들이 인생을 얼마나 소중하게 하는지 모른다. 갑자기 철이 드는 걸까.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다. 가끔 무신경해질 때 이 순간들을 기억하고 싶다. 다시 사랑의 마음을 품어내야 될 때에 채찍이 될 수 있을까.
시간들이 흩어져 간다.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까마득한 이야기인 듯하다. 견학을 갔다 오던 학교버스가 중간에 섰다. 산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하늘의 윤곽마저 경계가 없어진다. 기다리는 차는 더디 온다. 지나가는 차들이 얼마나 쌩쌩 달리는지 멈춰 있는 버스가 흔들린다. 지난주 일이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이 정도의 일이랴! 계획들이 무너진다. 열 시에 집에 온다. 내일 제출해야 하는 과제를 시작해 볼까.
* 늦깎이 학생은 기말고사를 치르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