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간다

by 민진

한 학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말시험을 치른다. 범위는 배운 데서 배운데 까지. 중간고사를 건너뛰었기 때문에 일곱 단원, 여덟 단원이다. 나에게는 무리다. 다행히 양이 많다고 핵심을 짚어주는 분도 있다. 그것만 가지고도 시간에 쫓기면서 안절부절못한다. 일찍 끝내 놓은 과제도 있지만 큰 단위의 숙제를 늦게까지 미루다가 쩔쩔매며 겨우 날짜만 맞추기도. 모든 것을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리미리 하자고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그대로이다. 몸에 밴 습관이나 태도를 바꾼다는 것이 여간 어렵지가 않다.


비대면 시험을 치른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던가. 생소한 것들을 마주하니 난감하기도 하고 안 할 수도 없다. 보고 쓰는 것을 방지한다고 서약서를 첨부한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닌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고민한다. 밤에 잠을 자면서도 정신이 들면 조금 베낄까. 아니 그러면 안 되지. 남 안 볼 때가 더 중요하잖아. 자신과 씨름을 하면서 시간은 간다. 시험 치는 날 어떻게 했을까.

여섯 과목 보는데 다 각각이다. 오픈 북을 한다는 말도 당일 날 해준다. 시험 끝나고 아들에게 말하니 그렇게 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시간은 정해져 있고. 책을 펼친다고 해도 그 많은 내용 가운데서 족집게로 문제를 찾아내야 되는 것이, 공부를 한 사람에게는 쉬운 것이지만, 대충 한 사람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답을 제대로 적은 것이 한 문제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나이 들어서 공부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게 된다. 카메라 두 대를 설치하여 움직임 하나, 고개 돌리는 것까지 노출된 상태로 치르기도 한다.

한 과목이 남았다. 젊은 교수님이라고 온라인 퀴즈식 시험을 본다고. 처음에 연습시킬 때에 스피드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이십 초 안에 끝내야만 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다른 방법으로 치르면 안 될까요? 문자를 보냈지만 아무 말이 없다. 다른 친구들도 너무 빠르다고 했는지 십 초를 늘려주었다. 그래, 학생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다른 친구들 하는 것처럼 해야지. 나를 다독인다. 몇 번의 반복을 시켜주어 안심이 되긴 하지만, 한 문제당 삼십 초에 지문을 읽고 답을 결정해 눌러야 된다.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잘할 수 있을지. 공부를 하면 조금 나아질까.

시험 시작. 효과음과 문제가 주어지고 바로 답을 고른다. 지문을 읽기도 전에, 보기가 주어지며 자리가 바뀐다. 순간 혼돈스럽고 놀랜다. 마저 읽지 못한 문제를 찾아 더듬거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들 컴퓨터 게임할 때 테트리스라도 많이 해 둘걸. 아쉬움이 밀려든다. 문제가 맞으면 순위가 위로 올라가고 틀리면 다시 맨 아래로 가기를 몇 차례 반복한다. 그냥 종이에 쓰라고 하면 다 맞을 것 같은데. 순간에 모든 것을 조합해 내야 하는 것이어서 공부를 신경 써서 하긴 했다. 삼십 문제라서 실제로 걸리는 시간은 짧다. 긴장감 때문인지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아는 문제도 조급증에 틀리고 뭔가에 쫓기는 듯하다. 내 인생에 처음 해보는 것들이 많은 해로 기록해야 될 듯하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수수께끼 나라에 가서 한 번도 먹어보지 않는 쌈을 먹고 있는 것 같다. 삼겹살을 굽거나, 불고기를 상추에 싸 먹는 것인데. 꼭 딱딱하게 말린 문어다리 한 개 넣고 쌈을 싸, 씹으려 해도 씹히지가 않아서 뱉어버리고 싶은 느낌. 억지로 누르고 살살 달래서 삼키기는 하는데 속에 들어가서도 콕콕 찌르는 기분이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선택하여 오물거린다.

견학 갔을 때 동기 중 한 명이 병리학 때문에 휴학을 심각하게 고민해 봤다고 했다.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닌, 저 푸르른 솔잎 같은 친구도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싶어, 용기를 가지기로 마음을 다졌다. 말린 문어를 두들겨 패서 물에다 푹 불려 삶아 싸 먹으면 조금 나을까. 기름기 잘잘 흐르는 고소함 가득한 돼지고기나 소고기로 변할 날이 있을지. 작년에 비교과 점수 때문에 참석한, 학점 잘 받은 것을 경진대회 비슷하게 발표를 했다. 대학에서까지 이래야 되는 줄은 모르겠지만. 공부만 했다고 자랑하는 것이 별로 좋아 보이진 않았다. 나는 체질적으로 그것이 맞지도 않고, 쓸데없는데 정신을 파는 뭔가가 있어 공부하려면 좀이 쑤신다.

그럴지라도 문어다리는 더 먹지 않도록,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는 해야 할 것 같다. 문과 쪽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과 공부를 시작했으니 당연히 어렵다. 이해하는 것과 외우는 것은 같이 굴러야 하는 두 바퀴와 같다. 점점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숙제를 잘했다고 교수님의 칭찬 한마디에 모든 시름이 씻겨나가는 것 같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다음 학기야 기다려라. 야들야들하게 푹 익힌 수육으로 상추에 새콤달콤한 쌈 무와 함께 맛있게 싸주마. 새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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