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열면 맞은편 사무실과 마주한다. 시원할 때는 모르는데 문을 열어젖히는 시기가 오면 난감하다. 일부러 보려고는 않지만 저쪽 창문에 불이 켜지면 은연중 눈이 간다. 낮은 담을 높여 보려 키가 큰 화분들을 나라비를 세운다. 소나무도 한 그루 더 얻어 와서 보탰다. 그중에 잎이 널찍널찍한, 은색 점이 찍혀 있어서 은 베고니아라고도, 천사 날개를 매단 것 같기도 해서 엔젤 윙 베고니아라고도 하는 나무가 있다. 그러더니 요즘은 점무늬 베고니아로 신고를 마친 듯하다.
봄이 오고 베고니아를 밖에 내어 놓는다. 햇빛을 받는다. 온몸이 따스해지면 겨드랑이에서 꽃을 내주기 시작한다. 시작점은 수꽃이 애타게 하트를 날려 보내는 것으로. 뜸을 들인 암꽃이 종소리를 울리기 시작한다. 한번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 쏟아지는 사랑을 어찌하지를 못한다. 사랑표와 종 이라는 조합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작은 핑크색 꽃들을 수도 없이 달아낸다. 꽃이 드물 때는 고와서 보고 또 보고. 계절이 무르익어 여기저기 이쁜 것들이 눈웃음을 치면 차츰 멀어진다. 사람이 간사해서 그런지 새로운 것에 눈길이 가기 마련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꽃 사태를 이루어내듯 피어난다.
몇 해 전에 아는 분 사무실에 갔다. 잎을 날개처럼 내려 펼쳐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열대식물이 있었다. 마무리 붓으로 살짝살짝 찍어놓은 것 같은 은점들. 화분이 멋스러우면 심긴 것들도 가치가 달라질까. 옷이 날개라는 말은 꼭 사람에게만 한정되지 않는 듯. 잘 어울리는 도자기 화분에 짱짱하게 자란 것들이 사랑을 듬뿍 받은 느낌이다. 햇빛이 옅어서 꽃을 잘 안 보여 준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때는 시원시원한 이파리만으로도 너무 멋졌다. 물꽂이 해서 뿌리 발을 한 것 몇 개를 가져왔다. 첫해에 첫사랑으로 방울소리 같은 꽃을 쉼 없이 보여주어 푹 빠졌다. 베고니아를 준 분에게 활짝 핀 사진을 보냈더니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며 기뻐했다.
그 해 여름 태양이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자 채소를 끓는 물에 데쳐낸 것처럼 잎이 쳐지고 그대로 멈췄다. 반그늘을 찾기가 어려워서 옮긴다고 옮겼지만 꽃을 더 피워내지 못했다. 누군가 내 마음에서 기쁨의 가닥 한 줄을 실처럼 뽑아가 버린 것 같은. 피어나서 한창 눈 맞추고 입 맞추며 꽃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있을 때, 갑자기 그만 봐! 하고 막을 내려버린. 고생을 해서인지 두 해 정도 꽃이 시원찮았다. 약만 올리다 말고는 했다. 몸보다 꽃이 더 많은 것 같던 꽃차례는 그리움으로 맴돌고.
올해 드디어 나무처럼 우람해지고, 잎을 넓게 펼쳐내자 담장이 높아졌다. 거기다 셀 수 없을 만큼의 꽃숭어리들. 잎이 말라질까, 삶아질까 노심초새가 내려앉는다. 아침에는 동쪽에서 오는 빛을 머금고, 뜨거운 오후 두세 시에는 낮은 담이지만 그늘이 드리워진다. 뿌리가 뜨거워지지 않아서인지 잎이 싱그럽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뿌리는 본체를 지탱하는 힘일까. 그 푸짐한 꽃송이들을 어디서 자꾸만 퍼 올리는지. 몸속 어딘가에 분명 꽃샘이 있는 것 같다. 날마다 꽃종이 울린다.
집을 길에서 올려다보면 나무가 보이고 꽃이 있는, 즐거움이 묻어나는 풍경으로 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담 넘어 고개를 쑥 내민 해바라기나 접시꽃이 내다보면서 너 어디 가니? 묻는 것 같은 집이 있었다. 장미가 담장에 화사하게 피어난 정원이 있는 곳에서는 들리지 않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은 것 같았고. 마음으로 그런 집을 꿈꾸었을까. 점 베고니아의 자잘한 웃음 방울들이 또르르 구르는. 내 마음은 핑크빛으로 물들어 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