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늄이 피기까지

by 민진

꽃씨를 샀다. 한 종류인데 이름은 다른. 발아를 시켜 겨울 동안 키워놓으면 봄에 꽃을 보여주리라는 계산을 했던 듯하다. 꽃을 빨리 보려고 잔머리를 쓴 것인지. 씨를 심었다. 뭔가 수상하다. 싹튼 것이 오십 개중 겨우 둘. 혹여 봄이 되면 잠자고 있던 씨앗에서 싹이 더 터 오를까 하는 심정으로 실망하지 않기로 한다. 조금 참았다가 봄에 파종했다면 훨씬 많은 새싹들이 났을 것을. 무엇이 그리 급해서 겨울 초입에 씨를 뿌렸을까.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꽂히면 진득하게 참지를 못하니. 그런 감정들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것이 속 사람이 여무는 것일까.

겨울 동안 조금씩 자랐다. 그 자그마한 것들이 꽃이 피겠나 싶었는데, 꽃잎을 방긋 물었다. 잘 키워진 것을 사면 될 텐데. 내 손으로 직접 키워보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제라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꺾꽂이를 하다 보니 난쟁이가 되었다. 분재처럼 모양을 잡았더니 그런대로 볼만하다. 같은 듯 다른 여러 종류로 키워보고 싶어서 주문했는데 욕심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친구가 장미처럼 핀 것을 자랑하면 당장에 사고 싶다. 제라늄 화분만 열 개정도 되는데 아직 만족이 안 된다. 갈증이 언제나 시원하게 풀어질까.

오래전 외국 영화를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서 제라늄 화분을 선물한다. 무슨 선물을 저 작은 화분으로 할까 생각을 했었는데. 받은 사람은 보물단지라도 품은 듯했다. 무슨 뜻일까. 사랑이 씨앗처럼 싹트고 자라 꽃이 피기를 바랐을까. 자기처럼 소중히 여기라는 것이었나. 마음을 준다는 의미였을지도. 정표를 주고받음은 다시 돌아온다는 약속이다.

길고 긴 시간

마음을 가지런히 해야 하나.

겉 사람이나 속 사람을 곱게 단장하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시간 속에서

꽃 피어나듯이

사랑을 기다렸을까.


제라늄은 사랑의 꽃이라고 속에 들어있다.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시간들은 아름답다. 사랑만큼 아프게 피어나는 꽃이 또 어디 있을까.


꽃이 피어난다. 꽃방울 하나하나 뭉쳐 꽃숭어리가 된다.

님이 올까.

마음이 설렌다.

‘님이 오시는지’를 끝도 없이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노래는 우리 인생이 다 이울도록 부르는 노래가 아닐까. 저 마음 깊은 곳에 끝이 없는 그리움이.

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오늘도 살아가야지.

제라늄 잎에서 향기가 난다. 꽃송이도 봉실하다. 조금 있으면 밭의 느낌이 날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걸 원했는지도. 키우다 보면 노란 전 잎 들이 갈색으로 말라간다. 초록이 바래서 노르스름하게 물들면 따 주기에 바빴다. 새파란 잎들만 보고 싶고, 누군가에게 잘 키운다는 생색을 내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겨서인지 제 색을 잃어버린 잎마저도 지켜보게 되었다. 한 가지 빛깔을 더 볼 수 있다면서. 잎이 바뀌는 것은 뭔가가 부족하다는 꽃말이다. 소리를 내지 못하니 암호처럼 뜬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알아듣고 아니고는 기르는 사람의 몫이다.

꽃대를 잘 올리다가 말려버리기도 한다. 어려움이 생기면 몸을 위해 꽃송이까지도 아낌없이 버린다. 한 개 정도로 그치지 않고. 그럴 때는 꽃을 보고 싶은 마음은 잠시 접어 둔다. 다시 피워나기를 기다린다. 흐르는 시간 속으로 망울을 머금고 살짝살짝 고개를 다시 내민다. 팔을 뻗히듯이 꽃대를 쑥 내밀 때의 기분은 나도 같이 피어나는 같다. 어느 사이 벙그러져 바람결에 몸이 살짝 기운다.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 화사하게 분홍빛 웃음을 문다.

‘오메’ 식당에 꽃이 많다기에 보기도 할 겸 친구와 약속을 잡았었다. 곳곳이 아름의 화분에 꽃이고 초록이 들이다. 빨간색으로 꽃 밥이 많은 제라늄을 얻어왔다. 여름 한낮에 가져왔더니 힘들었나. 겨우 뿌리를 내린 것 같다. 잘 키워서 두리둥실 꽃봉오리를 보려고 넓은 데에 심었다. 가을이 내려앉을 즈음 풍성한 꽃을 빼어 물어주겠지. 값을 치른다고 하니 꽃과 꽃을 맞바꾸자고 한다. 그곳에는 없던 란타나와 체리 세이지를 준비한다. 꽃 빚도 갚을 겸 친구랑 얼음 둥둥 뜬 콩국수 한 그릇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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