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by 민진

시간을 조정해서라도 농업기술원에서 하는 원예치료사 과정을 들으려고 했다. 창궐한 코로나로 인하여 삼월에 시작할 교육이 미루어지자 포기하고 강의를 듣기로. 다행히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하기에 교육을 받아도 될 것 같았다.

오월 중순에야 기술원 직원이 알려왔다.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서 주민 센터에 신청하라고. 수료증과 자격증, 재학증명서를 냈다. 일주일 후에 전화가 왔다. 수료증은 십 년이 넘어서 소용이 없고, 다른 것은 심사요건에 들었는데 지원자가 많아서 떨어졌다는. 신청서만 내면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작년부터 별러온 일이라서 낙심이 되었다.


여름방학이 되자 알림 중에 ‘스마트 원예전문가’ 과정이 떴다. 방학에는 무조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좋아하는 것만 한다는 원칙을 세워놓았는데, 살짝 흔들린다. 사십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책을 몇 권 읽을 수 있는지 글을 몇 편 쓸 수 있는지 따졌다. 그럴지라도 내년에 다시 한번 원예치료사 과정에 도전하려면 준비를 해야 할 것 같고. 담당 교수님에게 교육과정을 내가 소화할 수준인지 물어보았다. 괜찮겠다고 답이 왔다.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추임새도 같이.


알토란 같은 시간을 들이기로 한다. 서울의 ㄱ학교 교수님들이 주축이 된 첫 번째 비대면 강의를 들었다. ‘코딩의 이해’ ‘테라리움 이해’ ‘아두이노 우노’ 듣도 보도 못한 언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앱 인벤터 코드 작성하기’아주 생소한 말들이었다. 세 번째 날에는 학교에 실습을 하러 갔다.

부품 조합하는데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선들을 연결한다. 색깔을

구분하여 다음에 기억하기 좋도록 한다. 도움을 받기도 한다. 문제는 노트북으로 ‘코딩 코드 작성하기’를 하란다. 컴퓨터 언어로 명령을 내려야 된다고. 다행히 교재에 나온 대로 치면 되었다. 노트북을 처음 사용하여 서툴렀다. 자꾸 커서가 도망 다녔다. 마우스 기능이 있는 곳을 건드려서 그러는 줄도 몰랐다. 쉼표 하나, 점하나, 띄어쓰기를 그대로 복사하듯 쳐야 했다. 영문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세 분이나 되는 교수님들이 도와주려는 기색이 아니다. 학생들은 알아서 잘하는데 모두 거기에 있다.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 나 몰라라 한다는 서운함이 배어난다. 그렇다면 내가 해내기 힘들다는 것일까? 그래서 아예 거리를 두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앞질러 분분하다. 나는 어렵겠구나 하면서, 어떻게 명분 있게 빠져나갈 것인가가 명치를 누른다. 글씨를 모르는 문맹자 같았다고 할까. 한숨이 나온다.


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고 마쳤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게 된 학생에게 할 만 하나요 물으니 자기는 중학교 때부터 한 것이어서 쉽다고 한다. 누워서 떡먹기겠네요. 하자 웃는다. 나는 어렵다며 잘 가라며 헤어진다. 주섬주섬 부품 상자를 안고서 비 오는 거리를 추적추적 걷는다. 나 자신의 대한 실망과 아득함으로 발을 아무렇게나 철벅거리며 집으로 온다. 젖은 옷과 퉁퉁 불은 신발이 내 마음과 같다. 차들이 지나가며 물보라를 일으키건 말건 개의치 않는다. 아니 오히려 물방이나 맞아서 더 힘들어지고 싶은 삐딱한 감정 선이 그어진다. 열심히 해 보겠다고 먹은 마음이 일주일 만에 반대편으로 기운다. 자신감이 이렇게 없었나를 새삼 돌아보며 아연해진다.

그만둔다고 하자 남편은 무조건 하란다.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 않다고 살살 달랜다. 내가 무슨 앤가. 못한다고 펄쩍 뛰었다. 막내아들이 엄마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내 생각을 지지했다. 합리화할 수 있는 이유 하나 더. 다시 강의가 시작되는 월요일이 되자 우리 학교 교수님께 내가 왜 그만둘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긴 글의 문자를 드렸다. 그만두면 학교에 물질적인 피해를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하여 물었다. 민간자격증을 주관하는 회사에 알아보니 이미 시작한 사람은 반환이 안 된단다. 그럼 수료만이라도 하겠다고 했더니 아예 자격증까지 따면 더욱 좋겠단다. 감사합니다.로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내 생각을 건넸다는 것은 나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함일까.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일까. 앞으로 강의를 들어야 할 분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은 연약함의 표시는 아닌지. 순식간에 너무 많은 생각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고설킨다. 젊은 교수님들이 나이 든 학생을 대하기가 얼마나 조심스러울까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나에 대한 실망감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근거를 찾는다. 처음에 교수님에게 물어본 것도 이런 일이 있을 때 빠져나가려는 복선을 깔아놓은 것은 아닐까. 자격증은 놔두고 수료는 하자고 마음을 굳힌다. 내년에 한 줄을 써먹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두 번째 실습시간에는 출석하지 않았다. 또 갔다가는 논 한가운데 외롭게 서서 팔을 있는 대로 벌리고, 새는 날아와 어깨에 앉는데도 쫓지 못하는 허수아비처럼 벙어리로 있을까 봐. 이런 것이 반항일까. 누구에 대한 것일까. 하라는 대로만 하고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한 도전은 아니었을까. 시계를 되돌릴 수만 있다면, 하고 싶은 것들로만 내 인생의 그래프를 채우고 싶다.


‘아쿠아포닉스’ 과정이면서 내 발표 단원이기도 했다. ppt도 준비해본 적이 없어 숙제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학기 중 조별 발표는 잘하는 친구가 맡아서 했다. 무단결석을 하고 싶은데 차마 그러지를 못해서 수업을 담당한 교수님께 한 시간 전에 연락을 한다. 바로 전화가 왔다. 이론만 해서 수료증만 받겠다고, 발표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분위기가 부드러운 교수님은 알겠다고. 다른 말할 여지를 주지 않았으니까. 내 안의 완고함이 말이라는 줄기 속에 가득 차 뻣뻣했다.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미적대는 것보다는 분명하게 생각을 알리고 무거운 마음을 벗어던지고 싶었다.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고 나니 날아갈 것 같다.(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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