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과 원기옥
학창 시절 즐겨보던 만화가 있다.
드래곤볼이다.
서유기를 모티브로 한 만화인데,
세계적으로 2억 6천만부의 판매고를 자랑한다.
참 매력적이다.
점점 강해지는 적들을 통해 강해지는 주인공과 친구들,
그리고 세대를 이어가는 스토리는 어린 시절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처음에는 드래곤볼을 찾는 여정이었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잠재력을 갱신하기 위한 여정이었고,
최후에는 깨어난 잠재력으로 세상을 구하였다.
내가 강해질수록
세상을 더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드래건볼 속 인물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특히,
손오공이 셀과 함께 자폭할 때는
독립운동가에게서나 느끼는 경이로움과 신성스러움마저 느꼈다.
드래곤볼을 갑자기 이야기하는 이유는
오늘 윤석렬 파면을 보면서 들었던 '원기옥' 때문이다.
드디어 윤석렬이 파면되었다.
당연한 결정이지만
당연하지 않았던 과정과 시간.
그 불안감과 초조함이
날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윤석렬은 파면되었다.
마치,
징글징글한 셀이 죽는 것처럼 말이다.
윤석렬을 파면한다!
그 역사적 순간에서
나는 '원기옥'이 생각났다.
손오공이 계왕에게 사사받은 원기옥은
모든 우주의 에너지를 손오공이 받아 적을 무찌르는 필살기이다.
모든 우주인들의 간절한 염원이 모여야 만들어지는 원기옥.
그 원기옥이 오늘 파면처럼 보였다.
0.73%차로 당선된 순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고 좌절했다.
그리고 12월 3일을 기점으로 모든 국민들은 각자의 에너지를
윤석렬 파면에 보태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계엄군을 막았고,
국회는 계엄을 해제하고 탄핵을 통과시켰다.
소녀들은 응원봉을 들고나갔으며,
농민들은 트럭을 몰고 남태령을 넘었다.
그리고 유독 추웠던 그 겨울 속에서 많은 시민들이 키세스 담요를 둘러쓰며 외쳤다.
이 모든 이들의 목소리는 단 하나
"윤석렬 탄핵!"
그리고 그 원기옥들이 모여
결국 2025년 4월 4일 11시 22분.
윤석렬은 탄핵되었다.
그 원기옥의 소중함을 알기에,
이번의 사건은 모든 시민들의 염원이 만든 기적이었다.
이렇게 보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드래곤볼 속 만화 주인공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악당들과 공생하는 주인공들.
친일과 독재 정권의 후예와 공생하는 우리.
인간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셀.
대한민국 욕망의 빅데이터였던 윤석렬의 당선.
끊임없이 자기복제하는 셀.
내란을 동조하며 늘어나는 세력들.
그리고
손오공의 자폭과 셀의 생존과 하지만 어린 손오반에 의한 최후.
윤석렬의 탄핵과 그 이후의 대한민국을 이끌 젊은 시민들.
이 모든 모습들이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보였다.
세대를 거듭하며 스토리를 이어나간 드래곤볼처럼.
우리 대한민국도 세대를 거듭하며 민주주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드래곤볼은 만화였지만
대한민국은 현실이다.
윤석렬의 탄핵을 오늘 즐거워하지만
내심 불안감도 생긴다.
드래곤볼을 보면 레드리본-피콜로-프리저-셀-마인부우로 이어지는 악당들은 끊임없이
생성되어 주인공과 지구를 위협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 아닐까?
35년의 일제강점기를 지나 35년의 독재정권을 거쳐 37년의 민주주의를 누렸다.
그리고 다시, 윤석렬의 내란과 탄핵 앞에서 우리의 미래는 어떤 적들과 위협이 찾아올까.
만화책의 종장처럼,
스스로 되뇌어 본다.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극복해 내겠죠.
걱정은 필요 없어요!
대한민국에는 민주시민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