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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훈 Nov 26. 2023

OpenAI 사태로 보는 씁쓸한 기술 너드 잔혹사

샘 올트먼은 알지만 슈츠케버는 모르는 현실

경영너드 vs 기술너드


"애플의 창업자는 누구일까요?"


이 문제를 들은 사람의 대부분은 자신 있게 '스티브 잡스'라고 대답할 겁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라고 문제를 낸다면 아마 정답률이 현저히 떨어질 것 같은데요. 사실 애플은 스티브 잡스 외에도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과 '로널드 웨인(Ronald G. Wayne)'이 함께 창업한 회사입니다. (이후 로널드 웨인은 11일 만에 회사를 떠나며 실질적으로는 잡스와 워즈니악이 창업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애플 공동 창업계약서 中


워즈니악은 뛰어난 개발 실력과 특유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애플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지만, 잡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기술 너드'들의 전형적인 특징에 기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술 너드란, 특정 기술 분야에서 천재적인 지능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오로지 기술 개발에만 몰두하는 괴짜들을 말합니다. 워즈니악 역시 애플이 충분히 성장했을 때에도 내부 경영이나 관리자 역할을 맡기보다는 지속해서 엔지니어 역할을 자청했다고 전해집니다. 


경영 너드는 기술 너드와 마찬가지로 비상한 머리를 가졌지만, 기술보다는 회사의 성장에 집중하여 기업의 성장과 확장, 그리고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큰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기업 내에서 전략적이고 비즈니스 중심적인 결정을 내리며, 대외적으로 기업의 얼굴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스티브 잡스의 모습은 이러한 경영 너드의 대표적인 예시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잡스 역시도 처음부터 경영 너드였던 것은 아닌데요. 워즈니악과 의기투합하여 만든 애플의 초기 제품인 애플1과 애플2가 개인용 PC의 시대를 열면서 대박이 났고, 이후 잡스는 더욱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이상에 빠지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그의 손에서 탄생한 제품들이 시장의 큰 호응을 받지 못했고, 수익마저 악화되는 상황에 이르렀는데요. 그럼에도 제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욕심을 부리자 자신의 손으로 데려온 존 스컬리(전 펩시 CEO)에 의해 축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회사 내에서 여러 기행을 저지른 것도 해고에 한몫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애플에서 해고된 후, 그는 넥스트(NeXT)라는 새로운 컴퓨터 회사를 설립했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픽사를 인수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CEO의 역할을 경험한 잡스는 비즈니스 모델의 중요성을 깨닫고 점차 경영 너드의 모습으로 변모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시간이 흐른 뒤 애플에서 해고된 것이 인생에 있어 최고의 행운이라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복귀 (출처 : Newsweek)


잡스와 워즈니악이 모두 나가고 어려움을 겪고 있던 애플은 변화하고 있는 잡스의 모습에 주목했고, 넥스트를 인수한 뒤 잡스에게 경영권을 쥐어주며 소방수 역할을 맡겼습니다. 각성한 잡스는 '아이팟'과 세기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아이폰'을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나스닥 시총 1위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 너드와 경영 너드가 잘 융합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견 대립이 생기는 순간 이유를 대부분 경영 너드의 승리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요. 많은 기술 너드들은 기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기반으로 창업을 시작하지만, 오로지 기술에만 집중하다 보니 회사 내 영향력에 대해서는 소홀하는 경우가 많고, 직원들로부터 신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비해 경영 너드는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더 많은 권력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둘 사이의 의견 대립이 발생하는 경우 임직원들은 회사와 자신의 이득을 가져다주는 경영 너드의 편을 들게 되는 경우가 많고, 기술 너드의 의견은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외면받기 쉽습니다. 잡스가 기술 너드였던 시절 경영 너드였던 존 스컬리에 의해 축출된 사례와 초창기 애플에서 워즈니악의 영향력이 비교적 강했으나, 조직이 커진 이후에는 영향력이 줄어든 것이 이러한 상황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샘 올트먼 vs 일리야 슈츠케버


이번 OpenAI 사태는 경영 너드와 기술 너드의 전형적인 흐름을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특히 인류의 미래를 위한 AI를 개발하겠다는 목표 아래 설립된 OpenAI였기에 이번 사태는 더욱 피부로 와닿았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기술 너드의 대표성을 띄고 있는 '일리야 슈츠케버'의 관점에서 이번 사태를 조명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OpenAI가 설립된 배경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OpenAI는 인공지능 기술을 안전하고 유익하게 사용하며, 인류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기술 발전을 이끌고자 하는 목적으로 비영리 기관으로 출범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일론 머스크와 샘 올트먼이 있었는데요. 두 사람은 모두 경영 너드에 가까운 사람들이기에 기술 너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고, 이를 위해 슈츠케버가 적임자로 꼽혔습니다. 


일리야 슈츠케버


당시 슈츠케버는 구글 소속으로 텐서플로우와 알파고 개발을 성공적으로 리드하면서 딥러닝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특히 AI 4대 천왕이라 불리는 *제프리 힌튼의 제자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요. 이에 따라 안전한 인공지능의 개발에 대한 깊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배경은 OpenAI에 합류하기에 완벽한 후보로 만들었습니다. (*제프리 힌튼은 ChatGPT 열풍 당시 AI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구글을 나와 관련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머스크는 슈츠케버를 합류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그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는데요. 구글 입장에서도 슈츠케버는 내줄 수 없는 인물이었기에, 이동하는 과정에서 평소 절친했던 구글의 설립자인 래리 페이지와 머스크 간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참고)


슈츠케버는 OpenAI에 합류하여 ChatGPT와 GPT-4 설계를 주도하며 머스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해내기도 했습니다. (슈츠케버를 잘 아는 인물들은 그를 두고 'OpenAI 개발자 700명보다 슈츠케버 한 사람이 더 뛰어나다'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OpenAI 기술 개발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던 인물이지만, 이번 샘 올트먼 해임 사태의 주동자로 지목되면서 이사회에서 제외되는 결과에 이르렀는데요. 이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술 너드의 안타까운 모습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우선, 샘 올트먼이 갑작스럽게 해고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짧게 알아보겠습니다. (사태 전) OpenAI는 사내이사 3명과 사외이사 3명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그들의 설립 목표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한 마이크로소프트조차도 의결권을 가지지 못하도록 구조적으로 막아두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6명 중 4명만 마음을 모은다면 나머지 2명을 해임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사태 전) OpenAI 이사진


이사회 6명 중 한 명이자 CEO였던 샘 올트먼은 기업의 목표와 신념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기업이 생존할 수 있어야 대업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 아래 다양한 기업 활동을 펼쳤습니다. 대표적으로는 OpenAI의 지배를 받는 수익 제한형 영리 조직(OpenAI Global, LLC)을 설립했고, 외부 의존도가 높은 AI 반도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동 국부펀드의 자금을 조달하여 스타트업을 설립하려는 움직임 등이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진행된 OpenAI DEVDAY에서는 GPT Store를 통해 직접적인 수익화를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샘 올트먼과 *그렉 브록먼을 제외한 다른 이사진들이 보기에 OpenAI의 초심과 멀어지는 듯하게 비쳤고, 그들은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자신들의 사명을 지키지 못한 채 그저 영리 기업으로 변모할 것 같다는 우려를 사게 했습니다. 쉽게 말해, 마치 상업화에 눈이 멀어 AI 안전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개발을 몰아붙이는 듯하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렉 브록먼은 OpenAI 합류 전에 스트라이프라는 핀테크 스타트업을 창업했는데, 당시 VC로 활동하던 샘 올트먼의 투자를 받아 큰 성공을 거두면서 친(親) 샘 올트먼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샘 올트먼과 그렉 브록먼을 제외한 4명의 이사진은 두 사람을 축출하기로 마음먹었고, 4명 중 유일한 사내이사이자 OpenAI 기술 개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슈츠케버에게 총대를 매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슈츠케버는 이를 거부하지 못하고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이를 지켜본 외부인들은 자연스레 샘 올트먼과 일리야 슈츠케버의 대결 구도로 몰고 갔는데요. 기술 너드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슈츠케버는 여론전도 익숙하지 않았고, 대중들은 그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상황은 전반적으로 샘 올트먼에게 유리하게 진행됐습니다.


샘 올트먼 해임 사태를 후회하고 있는 슈츠케버 (출처 : 일리야 슈츠케버 x)


사실 예측해 보건대 슈츠케버는 중립의 입장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렉 브록먼 결혼식에 주례를 봐주기도 했을 만큼 사이가 좋았던 슈츠케버 입장에서는 양측이 원만한 협의를 하길 바랐을 겁니다. 이를 반증하듯 샘 올트먼의 해고 이후 얼마 못 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며, 두 사람이 돌아올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많은 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샘 올트먼은 결국 CEO로 복귀했고, 새로운 이사회가 구성되면서 OpenAI 발전의 기여도가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는 슈츠케버가 이사회에서 빠지게 됐습니다. 회사가 온전히 올바른 길로 가기만을 바랐고, 총대 멜 사람이 필요한 상황에서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을 가진 기술 너드의 잔혹사가 이어진 것입니다. 



마치며


자세한 내막이야 어찌 됐던 이번 샘 올트먼 해임 사건에서 슈츠케버의 대응에 미흡한 점이 많았던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정말 대의를 위한 결정이었다 하더라도, 임직원과 투자자들의 충분한 공감대를 확보한 뒤 후속 대응 방안까지 완벽하게 준비된 상황에서 스마트하게 실행되었어야 했습니다. 


이렇듯 이번 기술 너드의 잔혹사는 본인의 대처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이마저도 어쩐지 약은 모습을 갖추지 못한 채 어리숙하게 진행됐을 속사정을 생각해 보면 씁쓸한 뒷맛을 남깁니다.  


이번 사태로 샘 올트먼은 오히려 더 큰 권력을 쥐게 됐습니다. 조금 과장한다면, 앞으로 안전한 AI 개발과 발전 속도는 샘 올트먼 손에 의해 좌우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자제하지 않는 이상 그들이 추구했던 안전한 AI 개발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런 일이 쉽게 벌어지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OpenAI는 AI 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인 만큼,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경영 너드와 기술 너드간에 보다 균형 잡히고 상호보완적인 협력이 잘 이루어지길 바라며, 개인적으로는 기술 너드들의 일방적인 잔혹사가 지속해서 이어지지 않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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