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행을 하다 보면 "한국 사람들 정말 여행 많이 다닌다" 싶을 정도로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한국인을 마주친다. 우리 부부는 둘 다 I 성향으로,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나더라도 먼저 아는 체를 하거나 말을 거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그래도 가끔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때가 생기곤 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날 때마다 굉장히 높은 확률로 자신들의 먹을 거를 내어주곤 한다.
오늘은 그중에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외국 버스 정류장은 참 불친절하다. 국경을 넘는 버스를 타는데도 한국의 시골 버스정류장보다 정보가 없다. 독일 드레스덴에서 체코 프라하로 넘어가는 버스를 어디에서 타야 하는지 몰라 헤매던 중 한국인으로 보이는 어머님을 만났다. 서로 행선지를 확인하고, 여기가 맞네 저기가 맞네 하며 겨우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그렇게 감사합니다 하고 돌아서려는데, 어머님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얼 꺼내신다.
"이거 여기서 유명한 과자라 그래서 사봤는데, 한 번 드셔보셔"
몇 조각 안 남아 보여 괜찮다고 말씀드려도, 자기는 이미 많이 먹었다며 기어코 손에 쥐어 주신다.
양이 많고 적고, 맛있고 없고 가 문제가 아니다.
먹을 게 있으면 나눠줘야 직성이 풀리는 그 마음이 참 감사하다.
한 번은 체코에서는 신기한 인연을 만났다. 비교적 덜 알려진 '체스키 크룸로프'라는 곳을 관광하던 중 너무 이쁜 배경을 만나 지나가던 한국인 커플분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드렸다. 같은 장소에서 그분들도 사진을 찍어드리고 각자의 길로 헤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날 '프라하의 한 스타벅스'에 가서 주문을 하려는데 그 커플분들이 바로 뒤에 계시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한번 짚고 넘어가야겠다. 한국으로 예로 들면, 서로 다른 체코인들이 각각 한국에 여행을 와서 비교적 덜 유명한 관광지인 '순천 갈대밭'에서 잠깐 만났다가, 다음 날 '서울 홍대의 스타벅스'에서 만난 격이다. 쉽게 말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렇게 주문을 마친 우리는 자리로 돌아와 서로 신기하다며 다시 한번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곤 역시나 뭐가 없나 열심히 찾으시더니 딱 하나 있던 와플을 우리에게 쥐어주신다.
"드릴 게 이거밖에 없네요ㅠㅠ"
아니.. 우리가 맡긴 것도 아닌데..
심지어 이것밖에 없다는 사실에 왜 아쉬워하시는 것인가..
돈을 아끼려 커피 한잔만 시킨 우리에게 와플은 빛과 소금이 되어주었다.
이번에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이야기이다. 한국에서 챙겨간 육수가 모두 떨어져 한인마트에 갔는데, 원하는 제품이 없었다. 그렇게 빈 손으로 돌아가려 하자 갑자기 직원 분으로 보이는 분이 말을 거신다.
"세계 여행 중이신 거예요? 여기 라면 값이 참 비싸죠. 오랜 기간 여행 중이면 라면 땡기실텐데.. 제가 공짜로 드릴 테니 원하는 거 집어가세요! 사장놈이 저랑 친구인데 비밀로 하겠습니다ㅎㅎ"
외국에서 라면이라니, 이건 못 참지.
이번에는 인사치레라도 거절 못하고 곧바로 짜파게티 2개를 집었다.
"저 그럼.. 다 먹고 구글맵에 친구분이 라면 공짜로 주셨다고, 사장님 꼭 보시라고 리뷰 남길게요!ㅎㅎㅎ"
라는 농담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와 오랜 만에 기분 좋은 저녁 식사를 했다.
마지막은 헝가리에서의 이야기다.
우리는 둘 다 피부가 예민해서 샤워기 필터를 꼭 챙겨 다니는데, 헝가리에서 필터가 다 떨어져 당근(?)을 시도했다. 헝가리 오픈채팅방을 돌아다니며 필터가 남는 분이 없는지 기웃기웃 거리기를 며칠, 쓰지 않는 필터가 있어 팔겠다는 분과 연락이 닿았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분 역시 놀랍게도 필터만 들고 나오지 않으셨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봉지 안에 비타민C 같이 넣어두었어요! 그냥 먹으면 엄청 시니까 꼭 물에 타드세요!"
당근을 하러 나오기 전, 뭐라도 줄 건 없나 고민하다가 잘 포장되어 있는 비타민C가 좋겠다며 들고 나왔을 모습을 상상하니 또 너무 감사하다. 받은 순간 이미 비타민C가 몸 안에 생성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쉽게도 이건 사진이 없다ㅠㅠ)
놀랍게도 이 모든 일이 단 1-2개월 사이에 벌어졌다.
정말이지, 한국인은 먹을 거 안 주면 큰일이 나는 병에 걸린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