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심이 강한 한국 사람들도 철원의 추위만큼은 대부분 인정해 줍니다.
오죽하면 시베리아보다 춥다는 밈이 있을 정도인데요. 실제로 체감해 보면 정말 상상 이상으로 춥습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음.. 저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제가 입대한 2011년 1월은 2000년대 이후 가장 추운 달로 기록됐습니다. 만약 자대 배치를 받은 상황에서 이 추위를 맞이했다면, 사제품을 이용한다던지, 핫팩이라도 쟁여놓고 버틸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훈련병에게 주어진 것은 가장 기본적인 보급품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나마 주어진 보급품들도 알통 구보 앞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구보를 뛰다 보면 입에서 나온 수증기가 눈썹이나 머리카락에 붙어 금세 얼어버리곤 하는데요. 눈을 조금만 오래 감고 있으면 눈꺼풀이 붙어버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진짭니다. 못 믿으시는 분들을 위해 공감하시는 분들 라이킷 눌러주세요.)
훈련소에 입소한 지 한 2주 지났을까요. 여느 때처럼 구보를 하고 있는데 날이 따뜻해서 동기에게 "오늘 몇 도야?" 하고 물어보니 "오, 오늘 영하 10도밖에 안되네"라고 답했던 일화가 기억나네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실화입니다.)
갑자기 이 이야기는 왜 하느냐.
저는 지금 굉장히 따듯한 나라 태국에 와있는데요.
태어나 처음으로 1월에 반팔을 입고 지내던 와중에, 눈에 익은 날짜가 보였고, 생각해 보니 입대일이었고, 의식에 흐름에 따라 정말 추웠던 그때가 생각나 글을 작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군부심을 부리거나 추운 데서 고생했으니 알아달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건 아닙니다.
사실 저희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만큼이나 밑밥을 깔아 두었습니다.
모두가 가는 곳이니 별다른 마음 없이 아들을 군대에 보낸 당신.
보내놓고 나니 날씨가 왜 이렇게 추운지.
자식이 군대에서 고생할 걸 생각하니 자신의 따듯함이 괜스레 미안해진 당신.
평소 부족함 없이 켜두던 보일러였지만, 아들이 군대에 있는 동안은 꺼두고 생활하신 당신.
추운 방안에 벌벌 떨면서도 자식 걱정만 하던 당신.
고맙고 고마운 우리 어머니.
이 사실은 누나의 편지를 통해 알게 됐는데요.
저 때문에 덩달아 누나도 춥게 지낸다고 투덜 되던 게 생각납니다.
(물론 누나도 동생이 걱정되지만, 겉으로 티 안 내려고 그랬.. 겠죠?)
어머니의 따듯한 마음 덕분에 매섭던 추위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ps.
추운 날 고생하고 있을 군인 여러분들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