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살기와 여행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다르다고 느끼는 포인트는 음식에 있다.
짧은 여행이라면 기본적으로 현지 음식에 대한 호기심도 있을뿐더러 "기왕 해외에 나왔으니 현지 음식을 먹어야지!"라는 약간의 강박으로 인해 대부분의 식사를 외식으로 해결하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만약 뭔가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캐리어에 야무지게 챙겨 온 라면을 끓여 먹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있다.
그러나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외식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단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뿐더러 매번 식당과 메뉴를 고르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물론 태국과 같은 나라는 예외다. 이곳은 해 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것이 저렴하다.)
우리 부부도 한달살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음식 문제로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러나 한달살기 기준으로 8회 차에 접어들면서 제법 짬도 찼고, 일종의 루틴이 생기면서 편해지기 시작했는데, 오늘은 이에 대해 정리해 보려고 한다. 한달살기를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1) 전통 음식이 아니라 평소에 먹는 음식을 파악하라.
한 달 살기를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파악해야 하는 것은 현지 사람들이 평소에 먹는 음식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평소에 먹는 음식에 들어갈 재료들이야말로 아무 마트에서나 가장 쉽게, 가장 좋은 컨디션에, 가장 좋은 가격으로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전통 음식과 평소에 먹는 음식을 잘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으로 예를 들어보면 이해하기 쉽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전통음식 배우기 정규과정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음식은 닭고기냉채, 코다리조림, 김치말이국수이다. 우리가 이러한 음식을 매일 해 먹을 수 없지 않겠는가. 외국의 김치찌개와 같은 존재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나중에는 굴라시 사진만 너무 많아서 더 찍지 않아서 이정도다
그렇게 우리는 헝가리에서 굴라쉬(구야쉬)를 거의 매일같이 해 먹었다. (감히 얘기해 보건대, 웬만한 헝가리 식당에서 파는 굴라쉬와 비교했을 때 중간 이상은 갈 것이라 확신한다.)
2) 한인 마트에서 사야 할 것과 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아무리 현지 음식을 많이 해 먹는다고 하더라도 현지 음식만을 먹고살 수는 없다. 한국인의 피는 굉장히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반은 현지식, 절반은 한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그렇다고 장기간 이어질 여행에 한식 재료만 바리바리 들고 갈 수 없기에 중간중간 한인 마트를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일단, 장기간 해외여행을 하다가 한인 마트에 들어가자마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도 그랬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걸 살 수가 없다. 한인마트 가격은 어딜 가더라도 한국의 가격보다 1.5배~2배는 비싸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갑이 털리지 않으려면 효과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먼저, 밀키트와 같은 일회용 음식은 아쉽지만 내려놓아야 한다. 예를 들어, 떡볶이 밀키트를 사기보다는 떡과 고추장 등 떡볶이를 '해 먹을 수 있는 재료'를 사야 한다. 비슷한 돈으로 떡볶이를 몇 번이나 더 해 먹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떡은 떡국으로 고추장은 고추장찌개'로 활용하면서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범위를 넓힐 수 있다.
기본재료만 있으면 이 정도 한상은 거뜬히 해 먹을 수 있다
같은 이유로 고춧가루, 고추장, 된장, 간장은 기본으로 사야 하는 것은 기본이며, 조금 더 욕심낸다면 참기름 정도 챙겨두는 것이 좋다. 참기름은 조금 사치인 것 같은데? 싶을 수 있지만, 전혀 아니다. 해외에서 나물로 무쳐 먹을 수 있는 것이 꽤 있다. 나물 종류는 거의 대부분 끓는 물에 데쳐서 약간의 참기름과 소금만 있으면 뚝딱할 수 있고, 많이 해두면 밑반찬으로도 최고다. (시금치가 의외로 외국에 많다)
그리고 가능하면 꼭 한국에서 자른 미역을 챙겨가길 바란다. 미역국은 해외여행에서 최소의 부피로 최대의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라 자부한다. 미역국은 미역과 참기름, 간장만 있으면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이것만으로도 참기름의 존재가 사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 부부의 킥은 베이스 육수다. 코인 육수나 스틱형 육수가 있다면 꼭 쟁여두길 바란다. 음식을 조금 해본 사람이라면 한식에서 육수가 차지하는 존재감에 대해서 잘 이해할 것이다. 된장, 고추장, 고춧가루 등의 기본재료와 육수, 그리고 현지에서 파는 질 좋은 야채만 있다면 어지간한 국과 찌개는 거뜬하게 해 먹을 수 있다. (호박, 감자, 양파는 어딜 가도 있다.)
3) 익숙해질 때면 적극적으로 콜라보를 시도하라.
사실 해외에서 아무리 한식을 잘해 먹더라도 몇 가지 음식으로 돌려 막기를 할 수밖에 없다. 재료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이제부터 현지에 파는 음식으로 한식을 해 먹는 방법을 사용할 때이다. 특정 한식을 해 먹기 위해 모든 재료가 있는데, 한 가지 정도가 부족하다? 그렇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재료가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보고 그것으로 요리를 해 먹는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음식이 바로 부대찌개이다(이 이야기를 하려고 빌드업이 참 길고도 길었다). 유럽은 어디를 가더라도 소시지와 햄의 종류가 워낙 많고 맛도 있고 상대적으로 가격도 착하다. 북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에서도 여전히 소시지와 햄은 많았고, 이걸로 무얼 해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부대찌개가 떠오른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필요한 재료를 찾아보니 얼추 다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부대찌개에서 가장 중요한 베이크드 빈이 아무리 찾아도 없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싶은 찰나에 강낭콩 통조림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 북마케도니아의 현지식 중에는 강낭콩 스튜(타프체 그라프체)가 유명한데, 이를 해 먹기 위한 통조림이 얼추 베이크드 빈과 비슷하게 보인 것이다. 바로 구입했고, 결과는 대성공적이었다.
의정부 저리가라 싶은 오흐리드 부대찌개
사진만 보면 거창해 보이지만, 만드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현지에서 구매한 재료를 잘 썰어다가 차곡차곡 플레이팅하고, 한인 마트에서 구입한 기본 재료로 만든 양념장과 육수만 넣어주면 끝이다. 맛은? 물어보는 것 자체가 실례다. (사실, 라면 스프까지 들어갔으니 맛이 없는 것도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