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대한민국 과학기술계에 꽤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가수 지드래곤(권지용)이 카이스트 (KAIST, 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 특임교수로 임명된 것인데요. 6월 5일 카이스트에서 진행된 '이노베이트 코리아 2024' 토크쇼에 참석한 지드래곤은 행사 말미에 임명장을 받으며 공식적으로 교수 타이틀을 달게 됐습니다. 지드래곤은 앞으로 2년 간 카이스트에서 리더십 특강 등을 진행함과 동시에 카이스트 글로벌 앰배서더로서 국제적인 홍보 활동에도 기여할 예정이라 전했습니다.
그동안 연예인들이 이벤트성으로 대학 특강에 나서거나 교수로 임명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대중문화와 연관된 전공 수업이 대부분이었는데요.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산실이라 불리는 카이스트, 그것도 기계공학과에 아이돌 출신 30대 현역 가수가 교수로 임명됐다는 소식은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카이스트는 이번 임명 배경에 대해 "카이스트에서 개발한 최신 과학기술을 K-콘텐츠와 문화산업에 접목해 한국 문화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대하고자 추진됐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은 "카이스트가 개교 이후 늘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온 대학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권 교수 역시 문화예술계에서 세계적인 성취를 이룬 선도자이자 개척자라는 점에서 카이스트의 DNA를 공유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습니다.
이광형 총장은 과거부터 괴짜 기질을 많이 보여주신 분으로 유명한데요. 캠퍼스가 심심해 보인다며 오리를 연못에 풀어 키우는가 하면, 위아래 구분 자체가 고정관념이라며 TV를 거꾸로 세워놓고 보거나, 조직도를 거꾸로 붙여놓는 등 모든 것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곤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 이번 임명 역시 이광형 총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예상해 봅니다.
이번 임명에 대해 찬반 논란이 뜨겁습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최고 자리에 있는 만큼 좋은 시너지가 발휘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는 반면, 분야 간 괴리가 커서 시너지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인 반응도 많습니다. 특히 그간 서울대와 함께 학문적으로는 국내 최고의 대학이라는 프라이드가 있었던 만큼, 굳이 파격적인 시도를 했어야 했는지에 대한 아쉬운 반응도 많습니다.
양쪽 의견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득실에 대한 평가는 실제 강의가 진행된 이후 내리는 것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카이스트에서 대중문화인을 특임교수로 임명하는 것 자체로는 의미 있는 시도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산업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과학기술 분야도 서로 다른 두 가지를 엮어 생각하는 앤드 싱킹(And Thinking) 능력이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꼭 그 대상이 지드래곤이었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지드래곤이 트렌드를 선도하며 많은 성과를 내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드래곤은 불과 6개월 전만 하더라도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던 인물입니다. 무혐의로 밝혀진 사항이고 카이스트에서 철저히 검증한 뒤 임명했음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굳이 지금 이 시점에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임명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모든 시선은 지드래곤에게 향해 있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본질은 그의 소속사인 '갤럭시코퍼레이션'에 있습니다. 갤럭시코퍼레이션은 '피지컬 100', '미스터트롯', '1박2일' 등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여러 스튜디오를 산하에 둔 기업으로 유명한데요. 그동안 콘텐츠와 IP사업에서 발생한 매출을 꾸준히 엔터테크(엔터테인먼트+테크놀로지) 분야에 투자해 왔지만 크게 두각을 내지 못하다가, 지난해 말 지드래곤을 영입함과 동시에 다시 한번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지드래곤을 영입한 지 한 달 만에 세계 3대 IT 전시회 중 하나인 CES 2024에 깜짝 등장시키며 이목을 집중시켰고, 이번 지드래곤의 교수 임명을 앞에 세움과 동시에 갤럭시코퍼레이션은 카이스트와 케이팝을 위한 기술개발 MOU를 체결하며 엔터테크 기업으로서의 한 단계 도약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지드래곤 정도의 인물이라면, 더욱이 갤럭시코퍼레이션 정도의 기업이라면 단순히 오너의 의견을 따르기보다는 이러한 행보에 대해 자신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즉, 지드래곤 스스로가 연예인이 아닌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결정을 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갤럭시코퍼레이션과 계약 체결 당시의 발표 역시 이를 뒷받침합니다. 영입 기자회견 당시 "지드래곤과는 단순한 소속사의 관계를 넘어 파트너의 동반자 관계로 그동안 세상에 없었던 일과 하지 못했던 일들에 도전할 것"이라 전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최근에 공시된 갤럭시코퍼레이션 감사보고서에서는 아직 지드래곤의 지분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오너 이상으로 전면에 나서 기업의 이미지 브랜딩을 책임지고 있는 만큼 지분구조에 대해서도 유의미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도 추측됩니다. 예정돼 있던 계획이라 하더라도 지드래곤이 영입된 지 세 달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프리 IPO 도전 소식이 나온 것 역시 주목할 만한 대목입니다.
지금의 추세라면 다음 행보는 교수 타이틀을 기반으로 글로벌 테크 기업과의 파트너십 소식을 전하지 않을까 예상해 보는데요. 조만간 '권 교수님'이라는 타이틀을 넘어 '권 사장님'이라 불리는 지드래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