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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훈 Aug 02. 2024

서산에서 희망을 발견하다

서울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스펙이라는 말이 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크게 체감하지 못하지만, 분명 서울은 교통과 문화 인프라, 그리고 양질의 일자리까지 지방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나 역시 서울에 터를 잡으신 부모님 덕에 직장 생활까지 무난하게 이어올 수 있었다. 동시에 서울 밖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충남 서산에서 한달살기를 하기 전까지는. 


참고로 지난 1년 동안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겠다는 핑계(?)로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다행히 1년 간의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행인 점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노트북과 인터넷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었다. 고로 무조건 서울에 붙어 있을 이유가 없다. 교통과 문화 인프라만 어느 정도 포기한다면 서울을 벗어나도 괜찮겠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렇게 34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 살아 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선택된 첫 번째 지역은 충남 서산이다. 서울과 적당히 가깝기도 하고 바다와 산을 끼고 있어서 좋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선택됐다. 그렇게 도착한 서산의 첫인상은 "역시는 역시인가"였다.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가는 버스를 찾는 것부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도 곧잘 이용했던 대중교통이지만, 서산의 난이도는 꽤 높았다. 버스 시간표를 아무리 봐도 감이 잡히질 않아 결국 편의점을 운영하시는 사장님께 여쭤보았다. 


"잉? 그거 방금 전에 출발해서 30분은 넘게 기다려야 할 텐데? 택시 타고 가는 게 좋을 거예요"


우리가 가려는 곳이 외딴곳도 아니고 서산의 중심지로 가는 것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는 터미널에서부터 이렇다니. 역시 서울 밖은 위험한 건가 싶었다. 결국 택시를 타고 도착한 숙소는 평범한 원룸 오피스텔이었는데, 와 집이 꽤 크다. 서울에서 원룸 오피스텔이라고 하면 침대 하나 들어가면 꽉 차는 것이 보통인데, 이곳은 책상과 소파가 더 들어가도 남을 정도의 크기다. 집값이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가격은 서울의 절반이다. 


"오호. 좋은데?"


그리고 숙소 앞의 중앙호수공원으로 나가보았는데.. 



"와 뭐야. 너무 좋잖아?"


850m의 러닝 트랙이 둘러싸고 있는 중앙호수공원은 관리가 잘 되어 있어서 주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공원 한켠에서는 많은 사람이 모여 일사불란하게 건강 체조를 한다. 보고만 있어도 괜히 정감 가고 즐거워진다. 주말이면 버스킹을 하러 나온 사람도 있고, 강아지들도 산책하러 나와서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과 인사를 나눈다. 보자마자 호수공원의 매력에 빠진 우리는 매일 저녁 산책을 나오고 있다. 


호수공원 주변에는 서울의 중심부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괜찮은 상권이 펼쳐져 있다. 스타벅스를 필두로 유명 프랜차이즈들도 많고,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개인 카페들도 많다. 인생네컷, 탕후루가게, 코인노래방 등 유행한다고 하는 가게들도 빼놓지 않고 자리 잡고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서산이라고 하면 마냥 시골일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집 근처 하나로마트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제품들 상태도 좋고, 가격도 좋고, 무엇보다 마트 안에 다이소와 파리바게트가 입점해 있어서 참 좋다. 그리고 놀라지 마시라. 적립률이 무려 1.5%다. 서울에서는 (내가 그런 곳만 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0.1%, 많아야 0.5% 적립해 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1.5%라니. 포인트 적립하는 맛이 쏠쏠하다. 


점점 이곳이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아니. 직장만 포기한다면 정착하기에 충분히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서산 투어를 해보았다.



서산에서 가장 유명한 해미읍성의 모습이다. 이곳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날이 후덥지근해서 오래 걷기 쉽지 않은 날이었지만, 뻥 뚫린 읍성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시원하기까지 하다. 내부 구성도 좋았다. 한쪽에서는 주막과 카페가 있어서 가볍게 요기를 할 수도 있고, 다른 한쪽에는 투호장이나 국궁장이 있어서 가볍게 즐기기에도 나쁘지 않다. 사진에는 없지만 옛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전시공간들도 있어서 천천히 둘러보면서 산책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다. 


무엇보다 해미읍성 주변에는 맛집이 많다. 처음에는 해미읍성이 유명해서 주변에 많이 생겼겠거니 했는데, 3주가 지나서야 알게 됐다. 이곳이 백종원의 골목식당 촬영을 한 곳이라는 사실을. 호떡부터 시작해서 떡볶이, 뚝배기, 닭개장 등등.. 결정 장애가 올 정도다. 해미읍성 주변뿐만 아니라 서산에는 게국지, 우럭젓국 등 서울에서 쉽게 접해보지 못한 맛있는 음식들도 참 많다. (아, 무청을 절여서 만든 꺼먹지라는 서산의 향토 반찬도 까먹지 말자.)



참고로 이곳에 지내면서 우연히 전 서산시장님을 뵐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께서 서산 음식은 호불호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3주 정도 지내보니 그 말이 딱 맞다. 대부분 음식들이 자기주장이 쌔기보다는 간도 적당하고 중도를 참 잘 지키는 맛들이다. 지내면서 맛없었던 곳들은 없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게국지가 참 맛있었다)


아, 잠시 음식이야기로 샜지만.. 서산에는 해미읍성 말고도 간월암, 개심사 등 둘러볼 곳이 많다. 특히 한우목장 주변은 드라이브코스로 참 좋다. 이전에 작성했던 맹꽁이도서관처럼 숨은 보석들도 곳곳에 존재한다. 




기분 탓인지, 지역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참 친절하다. 식당을 들어가도, 카페에 들어가도, 공방에들어가도, 길거리에서 사람들 마주쳐도 모두 하나같이 친절하시다. 3주밖에 지내보지 않았지만, 서산은 여러모로 상상했던 것보다 좋았다. 


서산이 첫 여행지라 다른 곳과 비교해 볼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서울에서 사는 것이 무조건 정답은 아닐 수 있겠구나 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다음에 이어질 진주 한달살기가 더욱 기대가 되는 이유이다. 


*아이가 없으며, 생활 반경이 크지 않고, 노트북만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30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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