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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lee May 19. 2022

[2022-4] 태어나길 잘했어

[문화일기 2022] 4월의 문화소비기록

벚꽃이 만개했다가 거짓말처럼 모두 사라지고

푸릇푸릇한 잎들이 올라오던 4월의 문화 소비 기록.


1. 4월의 노래 - Love Theory, NCT 태용

https://youtu.be/lKAiv1jmVxA

easy listening으로 듣기 좋다.

따뜻한 봄바람이 느껴지는 봄에 엄청 들었던 노래.


2. 4월의 드라마

-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2021)

이제 유효하지 않은 제목이 되어버린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제목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지만, 내용은 더 범상치 않다. '80년대 김연아'로 불리는 사격 금메달리스트 출신 정은은 불미스러운 일로 사퇴하게 된 문화체육부 장관의 뒤를 이어 단기 땜빵용으로 들어가게 된다.

 

정은은 체육계 폭력을 뿌리 뽑기 위해 '체수처' 출범에 주력하고, 체수처 출범과 동시에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대선 잠룡'이 된다. 대선 잠룡이 되며 인기가 올라가는 사이, 정은의 남편인 별 볼 일 없는 정치평론가 성남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성남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현금 1억과 문화체육부 장관에서 퇴임을 요구한다.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고, 12부작이라 지루한 틈을 느낄 새 없이 정주행을 끝낼 수 있었다. 또 줄거리에서도 느낄 수 있듯 에피소드가 마라맛이기 때문에 재밌게 볼 수 있었다. 펜트하우스 류의 마라맛이 아니라, 은은하게 돌아있는 마라맛이기 때문에 더 재밌게 봤던 것 같다. 12부작임에도 소소한 반전이 계속 심어져 있고 절대 뻔하지 않아서 보는 나도 약간 은은하게 돌아가는(going crazy) 느낌을 받아 좋았다.


- 언성·신데렐라 병원 약사의 처방전(2020)

<언성 신데렐라 병원 약사 아오이 미도리>라는 만화 원작의 드라마이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병원 약사들의 이야기인데, 한국과 일본의 의료 시스템에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병원 약사의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서 약사의 업무를 너무 광범위하게 설정한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예를 들어, 약사가 의사가 놓친 증상을 캐치해서 진찰을 하는 수준에 이른다거나 선생님인 환자를 위해서 초등학교까지 찾아가 반 아이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받아온다거나 하는 등 드라마적 과장이 꽤 심하다고 느껴졌다.

약사의 이야기라는 게 참신하긴 했지만, 기존의 의학드라마와 다른 느낌은 받지 못했다. 또 주인공인 아오이 미도리라는 캐릭터가 환자를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고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이 늘 일손이 부족한 약제부의 모습을 생각하면 민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전혀 알지 못했던 병원 약사라는 직업에 대해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다나카 케이씨의 비주얼도 흥미로웠다.




3. 4월의 영화

- 겨울잠(2012)

30분 채 되지 않는 단편영화이다.

자전거를 타고 무작정 여행을 떠난 구병은 가던 길에 자전거 대신 기차를 타고 가기 위해 자전거를 판매하려 자전거 판매점에 들리고, 그곳에서 조송을 만나게 된다. 고물상에 가서 팔라는 판매점 사장의 말에 자전거를 들고 나왔던 구병은 자기가 팔아줄 테니 가서 밥 한 끼 먹고 가자는 조송을 따라가고, 조송의 집으로 가는 길마다 자신을 '아들'이라 소개하는 조송을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 전체에 깔려 있는 씁쓸함과 외로움이라는 감정들 사이, 처음 만난 구병을 '아들'이라 부르며 밥을 먹이는 조송의 행위는 아주 희미하게 '정'이라는 정서를 떠올리게 한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혈연관계에서의 끈끈함과 유대감 같은 그런 정서를 말이다. 아주 희미한 정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따뜻해지거나 하기보다는 서로를 '아버지'와 '아들'로 칭하는 모습에서 부자관계에 대한 뭐랄까.. 어떠한 그리움? 이미 그런 것들이 많이 사라져 버린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의 유대감 보다도 아버지-아들 관계 같은 것을 찾고자 하는 듯한, 조금 낡은 듯한 감성이 느껴졌다.



- 태어나길 잘했어(2022)

사고로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다한증 때문에 친구도 없던 춘희는 외로운 유년시절을 보내다 커 마늘 까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다한증 수술비를 모은다. 혼자서도 잘 노는 방법을 찾아가던 어린 시절을 지나 씩씩하게 홀로 살아가던 춘희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 서로의 상처를 털어놓는 상담 자리를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던 중, 갑자기 집으로 다시 돌아온 어린 시절의 춘희를 만나게 된다.

스포가 될 까 봐 그 이후의 이야기를 적기가 조심스럽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점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역시 나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는 것이다. 나에게 태어나길 잘했다고, 태어나서 고맙다고 할 수 있는 존재는 나를 그저 동정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사람도 아니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나를 무시하다가도 마음대로 동질감을 느끼던 사람도 아니고 바로 나 밖에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과 잠시 멀어지는 것도 괜찮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4. 4월의 책 : 칵테일, 러브, 좀비(조예은)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서 주변 사람들이 많이 읽길래 호기심이 가던 책이다.

단편 모음집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어서 한 2시간 안에 읽었던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던 단편은 물귀신 '물'과 숲에서 죽은 숲 귀신 '숲'의 이야기인 <습지의 사랑>


귀신이 된 후 오랜 시간을 혼자 고립되어 살았던 물이 숲을 만나 아주 오랜만에 타인과 함께하는 감각을 느끼고, 숲을 기다리고 숲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가 짧으면서도 기억에 남았다. 역시 인간은(이미 죽은 뒤 존재이긴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용한 부분은 숲을 만나기 전에 혼자서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던 물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시간이 많아지면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면 우울이 찾아들기 마련이라는 문장이 공감됐다. 가볍게 생각하고 웃으며 살아가는 무게감이 가벼운 삶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더 적합하다는 생각을 요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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