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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심삼일 글쓰기 Nov 07. 2019

#1. 꼭 앞으로만 나아가야하는 걸까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인도네시아인과의 NGO

그들은 가난했지만 불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행했던 건, 개발을 주장했던 내 자신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항상 앞으로 나가야한다. 사람은 발전해야한다고 배워왔다. 나를 힘들게 만든 것이 바로 그런 가르침이었고, 아마 지금의 10~20대들도 그런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이토록 치열한 한국의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자신을 남들과 비교한다. 사돈 팔촌의 친구까지와도 자신을 비교했고, 또 비교당해왔다. 남들보다 못하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왔다. 첫 수능에 실패해서 재수를 하던 날, 나는 내 인생이 끝난 줄 알았다. 입사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내 자신이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앞날이 막막하게만 느껴졌고, 나는 평생 패배자의 인생을 살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실패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5년동안 글을 썼으나 변변한 작품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고, 뒤늦게 취업준비를 했으나 실패했다. 하루하루가 우울했고,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한 놈인가. 그렇게 자괴감에 빠져살았다. 그런 나에게 한줄기 희망은 인도네시아에서 찾아왔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내가 NGO활동을 하면서 그들의 삶으로부터 배웠던 '비교하지 않기', '행복하게 살기' 같은 단순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이야기가 될 것 같다.



201736일 월요일 밤 1030


내가 간 곳은 자카르타에서 남쪽으로 160km 떨어진, 서부자와주 수카부미군 찌솔록면 까랑빡빡마을이었다. 출발 전부터 열악한 시설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가는 내내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듣기로는 종종 전기, 인터넷과 수도가 끊길 뿐만 아니라, 온갖 뱀과 벌레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지어 곡성보다 더 곡성 같은 곳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었으니, 출발부터 걱정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어차피 고생을 하기로 마음먹은 뒤였고, 해외 봉사활동 가운데 비교적 짧은 3개월이라는 기간 밖에 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모든 불편을 감수하겠다고 다짐하며 인도네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푹푹 찌는 습기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저절로 인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대부분 내가 여행을 다닌 나라의 공항은 그 나라 안에서도 냉난방이 잘되는 축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이렇게 습기가 느껴진다면, 내가 갈 곳의 상태가 어떨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정환형 교장 선생님이 마중 나오셨다. 교장 선생님을 나를 보자마자, 너무 반가워하시며 말을 걸어주셔서 왠지 시작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리는 KFC에 가서 치킨을 먹었는데, 인도네시아 특성상 소금이 너무 많이 쳐져 있어서 엄청나게 짰다. 패스트푸드점이 이 정도면, 앞으로 먹게 될 음식들은 얼마나 짤까, 그런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차를 타고 목적지인 수카부미군 까랑빡빡 마을로 향했다. 자카르타를 가로 질러가는 고속도로를 통해서 갔는데, 처음 2시간 동안은 길이 잘 닦여 있어서 한국과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후로 2~3시간 정도는 포장이 매끄럽지 않은 도로와 매우 굴곡이 심한 도로 때문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새벽 2시를 넘어감에 따라 졸음이 밀려왔다. 한국과는 시차가 2시간 나기 때문에, 한국이었다면 새벽 4시였을 것이다. 최악의 도로 상황도 밀려오는 잠을 막을 수는 없었다. 5분 간격으로 잠에서 깨고 다시 잠에 들고를 반복하며, 목적지인 가나안 농군학교에 도착했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시설이 좋아보인다. 마치 관광지 같다. 하지만 조금만 나가도 바로 산림지대이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건물을 보는 순간 나는 충격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시설들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떠나기 전까지 “군대 한 번 더 갔다고 생각해.”라고 말하시는 교수님 덕택에, 나는 오는 내내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허름한 막사에 유격훈련장을 생각했지만, 막상 도착한 곳은 제법 번드르르하게 지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도리아 양식으로 기둥까지 세워져있었다.

      

교장 선생님이 안내해준 방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에어컨이었다. 밤임에도 불구하고 바깥에서부터 밀려오는 더위와 습도 때문에, 대낮에는 얼마나 더울까 고민하던 찰나였다. 그런데 떡하니 놓여있는 에어컨의 모습이 반가우면서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다행히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오지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며칠 뒤 같이 생활을 하게 된 가람이가 “형 저는 이곳에 오고 충격 먹었어요. 제가 생각한 거보다 너무 시골이어서요. 물도 잘 안 나오고…….”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또다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애초에 나는 너무 기대를 안 하고 왔기 때문에 모든 것이 좋게만 느껴졌지만, 가람이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와서인지 충격을 먹은 듯 했다.


하지만, 결국 이곳이 오지(五指)라는 것을 실감할 수밖에 없는 일이 그날 밤에 벌어지고 말았는데, 간밤에 물을 마시러 나갔을 때 팔뚝만한 도마뱀이 벽을 타고 냉장고 뒤편으로 들어갔다. 그때의 충격은 뭐랄까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물을 뜨는 도중에도 자꾸만 도마뱀이 나타나 내 몸을 기어 다닐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재빨리 물을 뜨고 방으로 뛰어갔다.

  그날 밤, 팔뚝만한 도마뱀이 자고 있는 내 몸 위를 기어다는 꿈을 꿨다.                


영상을 누르면 또깨가 나온다. 처음봤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왔으면 신고해야지. 전입신고

어젯밤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11시 30분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서 식사를 했다. 처음으로 가람이와 은송이와 인사를 나눴다. WCM을 통해서 온 이들은 앞으로 3개월 간 같이 일하게 될 동료이자, 동생들이었다.


식사를 마칠 때 쯤,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옆에 있던 알리민 박사가 와서 내게 말을 걸었다. 내 이름이 ‘리’라고 말을 하자, 리는 인도네시아어로 비를 뜻한다고 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어떤 사람이 온 다음 날 비가 쏟아지면 그 사람이 좋은 기운을 몰고 왔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운이 좋게도 내가 온 다음 날에는 아주 폭우가 쏟아졌고 덕택에 나를 보며 좋아하는 인니인들을 보고 나 역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비가 그친 뒤, 나는 동네 경찰서에 전입신고를 하러 갔다. 인도네시아는 외국인도 무조건 그 동네에 있는 경찰서를 방문해서 전입신고를 해야 된다고 했다. 만약 그 지역에 도착한 뒤 24시간 이내에 신고를 하지 않으면, 경찰관이 나타나서 트집을 잡으며 돈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말에 밥을 먹자마자 바로 경찰서로 향했다.


하지만 경찰서라고 도착한 곳은 뭐랄까... 경찰서라기보다는 갱단들의 소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불도 키지 않은 곳에서 우글우글 모여 앉아서 쉬지 않고 담배를 피워대는데,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특히나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는 경찰서장은(모건 프리먼을 닮았다.) 보는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왼쪽에서 3번째가 경찰서장 모건프리먼 형님


나는 정말이지 조신하게 다리를 모으고, 그 위에 손을 올리고, 이제 갓 전입한 이등병처럼 앉아있었다. 그러자 경찰관들이 뭐라뭐라 말을 걸어왔다. 당연히 인니어였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내 모자를 가리키기에, 나는 내 모자가 탐이 난다고 생각하여 모자를 벗어서 건넸다. 그러자 경찰관들이 뭐가 그리도 좋은 히히덕덕 웃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자 긴장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고, 나는 다행히 모자 하나와 내 목숨을 맞바꾸었다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상병쯤 되어 보이는 포스를 풍기는 인니인이 거들먹거리며 내게 빵을 건넸다. 약간 옥수수빵에 안에 초코 크림을 넣은 맛이었는데, 부드럽고 고소하면서도 초콜렛의 달콤함이 묻어나오는 것이 완전 내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담배를 뽈뽈 피어대는 경찰관들과 악수를 하며 무사히 전입신고를 마쳤다. 가장 다행이었던 것은 그들이 나의 모자를 돌려주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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