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링의 적법성 @ 이은진 변호사 _ 법무법인 디라이트
1. 샘플링은 적합하다?
얼마 전 작곡가로부터 상담 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외국의 원곡을 샘플링해서 신곡을 만들어 앨범을 곧 발매하려고 하는데 문제가 없냐는 것이었습니다. 샘플링은 적법한 것으로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두 곡을 비교해 보니 정당한 이용을 주장할 만한 사안은 아니어서 원곡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고, 원곡자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바람에 결국 해당 신곡을 포기하고 다른 곡을 작곡하게 되었습니다.
‘쇼미더머니’의 연이은 흥행으로 힙합 음악이 대중화 되면서 음악 샘플링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샘플링은 기존 음반을 차용하여 별개의 음악 저작물을 만드는 행위로, 주로 힙합 음악에서 비트 형태로 가공되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샘플링에는 기존 음반의 일부를 발췌하여 그대로 사용하는 방법과 기존 음반의 일부를 수정하여 재녹음하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국내의 유명한 샘플링 사례로는 Maroon5의 ‘This Love’를 차용한 빅뱅의 ‘This Love’,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차용한 신화의 ‘T.O.P.’, Harold Faltermeye의 ‘Axel F’(비버리 힐즈 캅 OST)를 차용한 싸이의 ‘챔피언’ 등이 있습니다. 이는 결국 타인의 음악 저작물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저작자의 허락이 없는 경우에는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어, 샘플링의 적법성 여부는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Eva Rinaldi [CC BY-SA 2.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2.0)], via Wikimedia Commons
2. 미국의 샘플링 사례
1) Estate of James Oscar Smith v. Cash Money Records, Inc., et al. No. 1:14-cv-02703 (S.D.N.Y. May 30, 2017)
(1) 사실관계
미국 래퍼 드레이크는 재즈 오르간 연주자 지미 스미스가 독백 형식으로 녹음한 음반 중 일부를 자신의 음악저작물 도입부에 삽입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지미 스미스는 드레이크가 이와 같이 자신의 저작물을 허락 없이 샘플링 한 것은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2) 법원의 판결
법원은 ① 드레이크가 지미 스미스의 저작물을 기존 이용 목적인 재즈뿐만 아니라 다른 음악 장르의 내용으로 확장한 점에서 이용 목적과 특성이 다르고, ② 샘플링된 부분의 양은 변형 이용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합리적인 정도였으며, ③재즈와 힙합은 각 다른 시장을 타겟으로 하기 때문에 드레이크의 음반이 지미 스미스의 시장 점유율은 빼앗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드레이크의 위 샘플링 행위는 ‘공정이용’에 해당하여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시하였습니다.
https://law.justia.com/cases/federal/district-courts/new-york/nysdce/1:2014cv02703/425904/135/
2) VMG Salsoul, LLC v. Ciccone, No. 13-57104 (9th Cir. 2016)
(1) 사실관계
로버트 페티본은 자신이 저작권자가 아닌 ‘Love Break’라는 곡에서 0.23초의 호른 소리 부분을 샘플링하여 ‘Vogue’라는 음반(가수-마돈나)을 발매하였습니다. 이에 ‘Love Break’의 저작권자인 VMG Salsoul은 페티본, 마돈나, 음반사를 상대로 위 샘플링 행위가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2) 법원의 판결
법원은 미국 저작권법 제114조 (b)항이 “녹음물의 음을 모방하거나 흉내 내더라도 다른 음을 독자적으로 고정한 것으로만 이루어진 다른 녹음물의 제작, 복제에는 저작권자의 배타적 권리가 미치지 않는다 ”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Vogue가 Love Break와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녹음되었어도 녹음된 Love Break를 실질적으로 복제하지 않았다면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샘플링된 부분이 1초 이하로 매우 짧고, 원곡과 달리 호른 소리가 더 적게 들리며, 원곡의 많은 악기들 중 하나의 악기에 관해서만 샘플링이 이루어졌고, 키(key)를 변경하고 길이를 줄였으며, 다른 효과음이 추가된 점에 비추어 보면 평균적인 음악 감상자는 음악 차용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아 ‘사소한 이용’으로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3. 국내에서의 샘플링
국내에서는 아직 미국처럼 “샘플링”을 하나의 범주로서 인정하고 샘플링의 고유한 특성을 고려하여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다루어진 판례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로서는 샘플링의 저작권 침해 여부 판단 기준이 독자적으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통상적인 저작권 침해 판단 기준이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저작권법상 복제는 ‘인쇄•사진촬영•복사•녹음•녹화 그 밖의 방법으로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유형물에 고정하거나 다시 제작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샘플링 행위는 직접 발췌하여 사용하든 다른 방식으로 재녹음하든 복제행위가 됩니다.또한, 원저작물과 실질적 유사성을 유지하고 이것에 사회통념상 새로운 저작물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수정ㆍ증감을 가하여 새로운 창작성을 부가한 것이라면 2차적 저작물 작성행위도 될 수 있습니다(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7다63409 판결). 그렇다면 원칙적으로는 원저작자의 이용허락을 받아야만 샘플링 행위가 저작권 침해행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사례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도 샘플링 행위가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저작권법 제28조) 또는 저작물의 공정한 인용(저작권법 제35조의 3)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저작권 침해 행위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28조(공표된 저작물의 인용)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
제35조의3(저작물의 공정한 이용)
① 제23조부터 제35조의2까지, 제101조의3부터 제101조의5까지의 경우 외에 저작물의 통상적인 이용 방법과 충돌하지 아니하고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
② 저작물 이용 행위가 제1항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
1. 이용의 목적 및 성격
2. 저작물의 종류 및 용도
3. 이용된 부분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중요성
4. 저작물의 이용이 그 저작물의 현재 시장 또는 가치나 잠재적인 시장 또는 가치에 미치는 영향
이때 저작권법 제28조와 관련하여 법원은, “인용의 목적이 보도ㆍ비평ㆍ교육ㆍ연구에 한정된다고 볼 것은 아니지만, 인용의 ‘정당한 범위’는 인용저작물의 표현 형식상 피인용저작물이 보족, 부연, 예증, 참고자료 등으로 이용되어 인용저작물에 대하여 부종적 성질을 가지는 관계(즉, 인용저작물이 주이고, 피인용저작물이 종인 관계)에 있다고 인정되어야 하고, 나아가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한 것인지는 인용의 목적, 저작물의 성질, 인용된 내용과 분량, 피인용저작물을 수록한 방법과 형태, 독자의 일반적 관념, 원저작물에 대한 수요를 대체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13. 2. 15. 선고 2011도5835 판결). 한편, 저작권법 제35조의3은 “저작물의 통상적인 이용 방법과 충돌하지 아니하고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아니하는 경우” 공정한 이용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통상의 상업적 음악저작물의 경우에는 보도•비평•교육•연구 또는 이에 준하는 목적이 인정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제35조의3 해당 여부를 살펴야 하는데, 음악 시장의 특성상 장르가 다르더라도 원저작물의 통상적인 이용방법과 충돌하지 아니하거나 원저작자의 시장 수요를 잠식 시키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것은 어려우므로 샘플링의 경우 저작권 침해행위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샘플링을 하려면 원칙적으로 원곡자의 동의가 필요하고(음악이 신탁되어 있는 경우에는 신탁기관의 동의도 필요함), 원곡과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되지 않도록 하거나 공정이용의 범주에 해당되는 방식으로 이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¹17 U.S.C 114 (b) “The exclusive rights of the owner of copyright in a sound recording under clauses (1) and (2) of section 106 do not extend to the making or duplication of another sound recording that consists entirely of an independent fixation of other sounds, even though such sounds imitate or simulate those in the copyrighted sound recor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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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ate of James Oscar Smith v. Cash Money Records, Inc.
대법원 2013. 2. 15. 선고 2011도5835 판결
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7다63409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