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是是非非] @ 조원희 변호사 _ 법무법인 디라이트
“ICO(신규 코인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는 불법인가요? 국내에서 가능한가요?”
올해 초부터 자주 들었던 질문인데, 정부가 지난 12월 4일 가상통화 대책 태스크 포스(TF)를 발족하면서 “가상통화 거래를 엄정 규제하는 방안을 조속히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조만간 정부의 공식적 입장을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신규 코인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ICO(Initial Coin Offering)는 주식 상장을 통해 자금을 얻는 IPO(Initial Public offering·기업공개)에서 유래한 용어다. 가상화폐를 기반으로 한 기업의 특유한 자금조달 방식으로 스타트업(초기 기업)들이 큰 관심을 보인다.
ICO는 일반인으로부터(공모를 통해) 투자를 받는다는 점에서는 IPO와 유사하다. 다만 IPO는 현금을 납입하고 주식을 받지만, ICO는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를 납입하고 새로운 디지털토큰을 받는다.
주식 투자의 목적이 주가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이 목적인 것처럼 ICO 역시 디지털토큰을 통해 수익 배분이나 서비스 제공 등의 경제적 이익을 얻기도 하지만 디지털토큰이 유통되면서 가격이 오를 것에 대한 기대감이 ICO에 참여하는 주된 이유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신규 가상화폐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져 ICO에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
ICO는 블록체인 기반의 기업에게 아주 매력적인 투자조달 방식이다. 스타트업들은 액셀러레이터·벤처캐피탈(VC) 등 기관을 통한 투자는 계약상의 다양한 제약으로 자유로운 경영이 어렵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ICO는 상대적으로 경영상 제약이 적다. 또 IPO를 한다는 것은 엄격한 요건이나 절차로 인해 복잡한 과정과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현실에서 ICO는 기업들에는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ICO에 대한 불법논란과 엄격한 규제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는 높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투자자 보호의 필요성’ 때문이다.
법적 규제대상에서 제외돼 있는 국가에서의 ICO에는 특별한 절차가 없다. 일반적으로 백서(White paper)가 미리 공개되고 투자자는 백서의 내용을 통해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백서에는 디지털토큰의 발행을 통해서 조달받은 자금으로 진행할 사업에 대한 설명, 디지털토큰의 내용과 혜택,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설명, 개발자에 대한 정보 등이 기재된다. 이후 기업 또는 재단을 통해서 디지털토큰의 발행이 시작되면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납입하고 그 대가로 디지털토큰을 지급받게 된다. 조달된 가상화폐는 백서에 기재된 사업을 진행하는 데 사용하게 되고, 이후 디지털토큰이 거래소를 통해서 거래되기 시작하면 시장에서의 교환가치를 갖는다.
문제는 백서에 나와 있는 내용이 충분하고도 정확한 정보인지 그래서 그 정보만으로 투자 판단을 내리고 추후 발생한 투자의 결과에 대해 수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는 점이다. 백서는 불과 몇 장인 것에서부터 수십 장에 이르는 것까지 다양하다. 그 중에는 사업 내용이 구체화 되지 않은 것도 많다. 또 발행 기업에게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있지만 그 답변이 맞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결국 투자자는 ICO 발행기업이 제공한 제한된 정보만을 갖고 스스로 투자 위험성을 판단해야 한다.
의뢰인들이 필자에게 “ICO가 불법이냐”고 자문을 구하면 “규제기관의 의지에 달린 것 같다”는 다소 모호한 답변을 해 왔다. ICO 절차를 투명하게 진행하면 유사수신행위 등의 문제는 피해갈 수 있다.
그러나 ICO를 증권발행으로 볼 것인지 여부는 ICO가 없었을 때 만들었던 현재의 자본시장법 규정만으로는 정확한 해석이 쉽지 않다.
국가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투자자 보호를 위해 증권발행은 엄격하게 규제한다. 물론 ‘증권’의 의미나 범위는 국가마다 다르다.
한국 규정은 미국에 비해 제한적인 편이다. 디지털토큰을 ‘채무증권’으로 보자니 현재 예시돼 있는 국채증권, 지방채증권, 특수채증권, 기업채증권과 성질이 크게 다르다. 그렇다고 디지털토큰을 ‘지분증권’으로 해석하려고 해도 ICO에서의 발행회사와 투자자 사이의 관계를 계약 이상의 관계로 봐야 한다는 어려움이 생긴다. ‘투자계약증권’으로 해석하려고 해도 발생회사와 투자자가 공동사업을 한다고 볼 것인지에 대한 답변이 궁색하다. 물론 디지털토큰을 어느 하나의 제한된 형태로 규정하지 말고, 다양한 내용에 맞춰 달리 판단해야 하는 것이 맞기는 하다.
지난 9월 금융위원회는 “증권발행 형식의 ICO는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증권발행 형식이라는 조건을 붙인 것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증권발행’인지 여부에 대한 명확한 선 긋기가 힘든 만큼 ICO에 대한 전면적 금지라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최근 금융위원회가 “가상화폐의 제도화는 시기상조”라는 논평을 내 놓으면서 ICO에 대한 별도의 규제를 두기 보다는 가급적 증권발행에 포함 시켜 규제하는 쪽으로 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 이제 결론을 내려 보자.
“ICO는 국내에서 불법인가?” 디지털토큰의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증권발행의 형식이라면 불법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ICO에 대한 규제 당국의 입장이나 크라우드펀딩과 관련한 길고 길었던 법제화 과정을 돌이켜보면 ICO도 국내에서 제도화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눈을 돌려 밖을 보면 ICO를 통한 자금조달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2016년부터 급증해 올해 상반기에만 10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지난해 발행규모의 10배를 넘어섰다.
각국 정부는 ICO 규제 만들기에 잰걸음이다. 미국은 지난 7월부터 디지털토큰의 발행을 증권법상의 증권발행으로 보고 증권법에 따른 규제를 시작했다. 이미 몇몇 곳은 증권법 절차를 거쳐 ICO를 진행했다. ICO를 제도권 내로 끌어들인 셈이다. 싱가포르도 제도권으로 흡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기업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제도권 틀 안에서 ICO에 나서는 곳도 있지만 스위스·에스토니아·지브롤터 등 규제가 없거나 느슨한 곳을 찾는 기업도 늘었다.
ICO 합법 여부가 곧바로 블록체인의 운명을 결정짓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나 ICO의 규제가 블록체인 사업의 확산을 지연시킬 수 있다. 중국처럼 전면금지를 하지는 않겠지만, 당장 제도화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증권발행이라는 측면에서는 ICO에게 길을 터주고,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은 유사수신행위 규제나 신용공여금지·자금세탁방지 등의 방식으로 막으면 어떨까? 또 ICO를 하겠다고 해외로 가는 건전한 기업들에게 불필요한 역외적용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기를 바래 본다.
(서울경제 201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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